| 지정 사항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
| 제작 시기 | 통일신라(799년) |
| 관련 유물 | 홍성 용봉사,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용봉사 부도, 용봉사지 석조, 석탑재 등 |
용봉사 마애불은 용봉산 정상 북동쪽의 용봉사 경내에 있다. 용봉산은 홍성군의 치소였던 홍주성으로부터 북으로 4㎞ 떨어진 곳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덕숭산, 북쪽으로는 수암산과 이어진다. 용봉산의 옛 명칭은 ‘팔봉산(八峯山)’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많은 불교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용봉사 경내에는 사찰 입구의 용봉사 마애불을 비롯하여, 석조(石槽), 승탑, 석탑 등 많은 석조유물이 전한다. 또한 용봉사 계곡의 정상부에는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용봉사는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 이전의 역사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용봉사 마애불을 비롯한 사찰 경내의 많은 문화유산을 통해, 통일신라시대부터 그 역사가 이어져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용봉사 마애불은 용봉사 입구의 서쪽 바위에 남동향으로 조성되어 있다. 마애불은 전체 높이253㎝이며, 암반면을 깊게 파내어 고부조로 제작하였다. 마애불은 입상이며, 머리에서 상반신에 이르기까지 두께는 10~15㎝ 정도이다. 그러나 하반신으로 갈수록 조각이 얕아지며, 발과 대좌 부분은 조각되지 않았다. 마애불은 소발의 머리에 작은 육계를 갖추었다. 얼굴은 길쭉한 타원형이며, 눈이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고 코와 입은 작다. 착의법은 한 장의 대의로 몸 전체를 감싼 통견이며, 목둘레에 둥근 옷깃이 형성되어 있다. 옷주름은 가슴에서부터 하반신에 이르기까지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허벅지 부근에 두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 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크게 파손되었다.
불상의 우측에는 3열 10행으로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정원(貞元) 15년(799, 소성왕 1) 4월에 원오법사(元烏法師)가 만들었으며, 관인(官人) 장진대사(長珎大舍)가 향도(香徒)로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이 명문은 우리나라 마애불의 명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조성 연대와 제작자, 시주자를 알 수 있는 몇 안되는 예이다.
용봉사 마애불은 사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찰 입구에 마애불이 조성된 사례로는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보물),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보물) 등이 있다. 같은 용봉산 내의 홍성 상하리 마애보살입상 역시 비슷한 배치를 보인다. 용봉산의 두 상은 위치 뿐만아니라 착의법, 수인 등에서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용봉사 마애불이 홍성 상하리 마애보살입상의 제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용봉사 마애불은 명문을 통해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8세기에서 9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불상 양식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도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조성된 마애불로서, 9세기 이후 지역 양식의 형성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서 의미를 지닌다.
명문
“貞元十五年己卯四月日仁符
◯佛願大伯士元烏法師
◯香徒 官人長珎大舍”
※출처: 국가유산지식이음/연구DB/금석문검색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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