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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삼국
관련 유물 화전리사지 출토 석조불상편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석주형의 바위 4면을 깎아 각 면에 불상을 새긴 사면불 형식의 마애불이다. 이 상은 1983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발견 당시에는 도괴(倒壞)된 채 매몰되어 있었으나, 발굴 조사 후 원래의 위치로 추정되는 암반 위에 여래좌상을 남쪽으로 하여 현재와 같이 배치하였다. 1983~1984년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원 불상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불상 머리와 손, 옷자락 등이 발견되었으며, 이외에도 보살두, 석탑재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조사면불상의 현재 높이는 285㎝이며, 남쪽면에는 여래좌상, 동, 서, 북면에는 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남면의 여래좌상은 조각면이 가장 넓고 불상의 크기도 커서, 사면불상의 주존으로 추정된다. 광배를 포함한 남면의 높이는 198.8㎝이며, 두부가 결실된 불신의 현재 높이는 105㎝이다. 불신은 환조에 가까운 형태로 조각되었지만, 머리와 상반신 일부만 환조이고 등 이하는 바위면과 붙어 있는 부조이다. 남면 여래좌상은 양 어깨를 덮는 방식으로 대의를 착용하였으며, 열린 가슴 안쪽에 입은 내의는 ‘y’자 모양으로 여며져 있다. 복부에는 군의 띠매듭이 고리 모양으로 돌출되어 있다. 어깨, 팔, 복부에 흘러내리는 옷주름은 비슷한 간격을 이루고 있는데, 사이사이의 요철(凹凸)을 강하게 주어 옷주름의 높낮이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결가부좌하고 있는 하반신은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지만 대부분 파손되어 원형을 뚜렷이 알 수 없다. 복부 옆에 들고 있는 양손은 모두 결실되었는데, 위치로 보아 시무외·여원인을 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손목 부분에는 원형 홈이 깊이 파여 있어 손을 별도로 제작하여 끼웠던 것을 알 수 있다. 광배는 연판형이지만,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광배 내면은 원형 두광과 신광을 중심으로 하며, 그 외연은 화염문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두광은 중앙의 연화문 둘레를 빛줄기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주변을 당초문 형태의 덩굴이 불규칙한 형태를 이루며 감싸고 있다. 두광의 정상부에는 연꽃 위에 얹어진 원형 보주가 새겨져 있다. 신광은 덩굴무늬로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한편 두광과 신광 외부의 광배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염문은 3~4번의 굴곡을 그리며 상승하는 형태로, 높낮이를 강하게 표현하고 끝을 날카롭게 다듬어 화염의 일렁임을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동면에 새겨진 여래입상 역시 두부가 결실되었으며, 조각 기법은 남면과 동일하게 상반신 이상을 환조, 하반신을 부조로 하였다. 불상의 목 부분에는 원형 홈이 깊게 파여 있어, 별도의 석재로 두부를 제작하고 결구 부재를 사용하여 연결시켰던 것을 알 수 있다. 동면 여래입상은 통견의 방식으로 법의를 착용하였으며, 내의와 군의 띠매듭의 형태는 남면 여래좌상과 같다. 대의 자락은 신체 전면에 넓은 간격을 이루며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역시 손 부분이 결실되었는데, 남면과 동일한 방식으로 별도의 손을 제작하여 끼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위치로 보아 시무외·여원인으로 판단된다. 광배는 두광만 표현되었으며, 연화문과 이중 테두리를 갖춘 단순한 모습이다. 한편 상의 우측 아래에는 인물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이 남아 있지만, 상반신 이상과 발 부분이 결실되어 명확한 형태는 파악되지 않는다. 북면에 새겨진 여래입상은 역시 두부가 결실되었으며, 현재 높이는 137.2㎝이다. 이 상은 착의법, 손의 제작 방식, 광배 등의 형태가 동면 여래입상과 동일하지만, 남면, 동면과는 달리 두부에서 하반신에 이르는 불신 전체를 부조로 조각하고 있는 것에 차이가 있다. 발 아래에는 연화대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면은 네 면 중 손상이 가장 심하며, 조각면도 가장 좁다. 불상의 크기 역시 116.4㎝로 가장 작다. 이 상 역시 머리에서 발끝까지 부조로 제작되었으며, 별도로 제작한 손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서면 불상의 형태는 북면과 거의 동일하지만, 다른 상들에 비하여 몸을 약간 오른쪽으로 틀고 있는 모습이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몇 예 남아 있지 않은 백제의 석불로서, 삼국시대 특히 백제 불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 상은 현재 남아 있는 삼국시대 불상 중에서는 가장 뚜렷한 석주형 사면불의 형태를 띠고 있어, 중국의 석굴의 중심주와 같은 형태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환조와 부조의 병행, 별도 제작한 불수, 불두 등을 결구하는 기법 등은 마애불 제작 방식의 선구적인 형태로서, 고대 불상의 다양한 제작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상은 백제의 옛 영토였던 예산군 화전리에 위치하여,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태안 동문리 마애여래삼존상과 함께 그 조성 주체가 백제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또한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는 최초로 ‘사면’에 불상을 새긴 석불로서, 백제 불상 중 가장 선행하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상에 반영되어 있는 양식 경향은 중국 남북조시대, 특히 동위(東魏) 불상 양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독창적인 광배 표현, 착의법 등은 백제 특유의 양식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태안, 서산의 마애불과 7세기 후반에 제작된 연기 지역 출토 불비상, 7세기 일본 도리(止利) 양식으로 이어지는 백제 불상 계보의 시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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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전경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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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남면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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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남면 여래좌상 좌측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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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남면여래좌상 우측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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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남면 여래좌상 광배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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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동면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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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동면 여래입상 오른쪽 측면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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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동면 여래입상 목 상면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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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북면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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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북면 여래입상 광배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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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서면
    한국의 사지(상)-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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