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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지정 사항 국보
제작 시기 통일신라 또는 고려
관련 유물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 용암사지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월출산 서쪽의 최고봉인 구정봉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다.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는 월출산은 ‘월생산(月生山)’이라고도 불렸으며, 신라 때부터 소사(小祀)를 지냈던 영암 지역의 명산이다. 마애불이 있는 곳은 ‘용암사지(龍巖寺址)’로 추정되는 절터이다. 이 절터에서는 통일신라~조선시대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석탑 2기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곳에서 ‘용암사(龍嵒寺)’명 기와편이 발견되었을 뿐만아니라, 마애불 주변에서 ‘통화이십오년 정미(統和二十五年丁未)’라는 명문이 적힌 기와편도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 와편은 마애불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데, 이는 마애불에 전각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 제작 시기의 하한이 ‘통화25년’ 즉 1007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마애불은 암반 높은 곳에 북서향으로 새겨져 있다. 대좌와 광배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860㎝이며, 불상 크기는 600㎝이다. 바위를 파내어 여래좌상의 윤곽을 조성하고 그 내부를 둥글게 다듬어 광배를 새긴 방식으로, 불상의 머리에서 하반신에 이르기까지 고부조되어 있다. 불상은 편단우견의 착의법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 여래좌상으로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였던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불상의 어깨와 가슴에서는 양감이 느껴지고, 옷주름 역시 굵은 주름과 잔주름을 활용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인다. 대좌는 대의자락이 전면으로 흘러내린 상현좌(裳懸座) 형식을 이루고 있는데, 통일신라-고려시대 불상 전체를 통틀어 드문 사례에 속한다. 마애불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갖춘 거신광으로, 두광은 연화문과 덩굴무늬로, 신광은 덩굴무늬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광배 형태는 같은 월출산 내의 영암 월곡리 마애여래좌상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이 마애불의 여러 요소들이 이후 전개되는 고려시대 전라도 지역 불상 양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마애불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높이 87㎝의 인물 입상이 새겨져 있다. 이 상은 오른손에 병과 같은 형태의 지물을 들고, 왼손은 배 앞에 두고 있다. 이 상은 선재동자상, 공양자상 또는 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정확한 존명은 알 수 없다.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양감이 풍부하고 윤곽이 분명한 신체 표현, 얇은 대의 표현과 항마촉지인의 형식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머리가 신체에 비해 커서 상체가 왜소해 보이고, 어깨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각져 있으며 팔이 가늘다. 또한 손이 크게 표현된 점은 신체 비례의 정형성이 파괴되는 고려시대 불상 양식과 가깝다. 따라서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통일신라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의 전형적인 도상을 계승하면서도 고려 양식으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9세기 후반 또는 10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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