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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고려
관련 유물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 서울 승가사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서울 북부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서쪽의 비봉 정상부 아래에 위치한다. 마애불은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인 승가사(僧伽寺) 경내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대웅전 서쪽 상부의 암반면에 조각되어 있다. 마애불 남동쪽 아래에는 ‘약사전(藥師殿)’으로 명명된 석굴이 있으며, 석굴 내에는 광배 명문을 통해 1024년이라는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보물)’이 있다.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14m에 가까운 거대한 바위 중앙에 9m에 달하는 높이로 부조되어 있으며, 좌향은 남동향이다. 광배와 대좌, 보개를 갖추고 있으며, 불상만의 높이는 600㎝이다. 조각 두께는 두부에서부터 하반신으로 갈수록 얕아지며, 광배와 대좌는 두께 1~2㎝ 미만의 저부조로 새겼다. 마애불은 소발의 머리에 높은 육계를 지니고 있다. 얼굴은 방형에 가까운데, 긴 눈꼬리가 위로 치켜올라가 있으며 콧날이 날카롭고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이 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의 착의법을 취한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으로서, 통일신라 이래 고려 전기까지 계승된 전통적인 여래좌상의 도상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항마촉지인과는 달리, 무릎 아래로 내려뜨린 오른손이 약간 사선 방향으로 꺾인 모습이 특징이다. 조각 두께가 얕은 것에 비해 가슴 부분에는 양감이 풍부하게 느껴지며, 허리의 윤곽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편단우견으로 착용한 대의 자락에는 수직과 사선의 주름이 얕게 새겨져 있는데, 왼쪽 겨드랑이에 새겨진 ‘U’자 형태로 흘러내리는 옷주름은 고려 전기 철불, 석불, 마애불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육계 위에 끼워져 있는 팔각 보개는 마애불로서는 이례적인 형식이다. 이는 고려 전기에 조성된 대형 석불에 보개가 동반되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의 유행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광배는 상부 1/4 지점에서 굴곡진 연판형이며, 단순한 윤곽선으로 표현하였을 뿐 별도의 장식은 없다. 대좌는 앙련과 복련이 맞붙은 형태의 연화대좌로서, 중앙에서 양옆으로 펼쳐지는 연꽃의 모양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마애불 광배와 암반 주변에는 방형, 혹은 원형의 홈과 돌기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흔적은 마애불 상부에 지붕과 같은 형태의 시설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도상과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의 제작 기술로 구현한 고려 전기 마애불의 대표작이다. 마애불의 제작 시기는 고려 전기인 10~11세기의 작품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고려 현종~예종 재위 기간에는 남경(南京)의 경영이 추진됨과 동시에 마애불이 위치한 삼각산(三角山:북한산)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또한 불교적인 의도를 지닌 왕실의 행차와 함께 많은 불사가 삼각산 지역에 집중되었는데, 특히 마애불이 있는 승가굴은 이러한 왕실 불교 후원의 중심에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마애불의 조성은 11세기 고려 왕실의 삼각산 후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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