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사항 | 보물 |
|---|---|
| 제작 시기 | 고려 |
| 관련 유물 | 서울 삼천사, 고양 삼천사지 대지국사탑비 |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북한산 삼천사 경내에 있다. 삼천사는 삼각산 서부의 의상봉과 응봉 사이에 형성된 삼천사 계곡 중턱에 위치한다. 삼천사는 창건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021년에 건립된 「현화사비(玄化寺碑)」에 1018년 현화사 주지로 임명받은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주석처(住錫處)로 기록되어 있다. 법경은 고려 현종(顯宗, 재위 1010~1031)이 두 차례에 걸쳐 왕사(王師)로 임명할 정도로 현종과 인연이 깊은 유가업의 고승이었으며, 삼천사에서 입적하였다. 삼천사는 삼각산 지역의 대표적인 유가업(瑜伽業) 사찰로서, 특히 고려 전기에 중흥을 이루었고, 계곡 전체가 사역(寺域)을 이룰 정도로 큰 사세를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곡 곳곳에는 사찰과 관련된 시설이었을 석축과 건물지, 석탑재 등의 석조유물들이 산재한다.
현재의 삼천사는 삼천사 계곡 초입에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삼천사의 규모가 계곡 전체를 아우렀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곳은 사찰 입구에 해당한다. 따라서 삼천사 경내에 있는 마애불은 조성 당시 사찰 입구에 해당하는 곳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이 사찰 입구에 마애불이 조성된 것은 이례적인 배치로, 유사한 사례로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홍성 용봉사 마애여래입상 등이 있다.
마애여래입상은 삼천사 북쪽을 감싸는 암반의 남서향면에 새겨져 있다. 광배와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303㎝이다. 불상은 암반면 중앙에 2~3㎝ 내외 두께로 얕게 새겨져 있는데, 암반 상부에는 자연 암석이 돌출되어 마애불의 상부를 지붕처럼 덮고 있다. 암반면 곳곳에는 전각을 씌웠던 흔적인 기둥 구멍들이 남아 있으며, 마애불 머리 위에는 물길을 파 빗물이 불상에 직접 흐르지 않도록 하였다.
마애불은 연화대좌 위에 서 있으며, 두광과 신광으로 구성된 광배를 지니고 있다.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넓고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대의는 양어깨를 덮는 방식으로 착용하였으며, 가슴에 내의와 군의를 묶은 띠매듭이 드러나 있다. 특이한 것은 군의 띠매듭이 대의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표현은 중국 고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복고적인 표현이다. 얕게 양각되어 있는 마애불은 옷자락 끝단, 옷주름 일부를 양각선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마애불의 회화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수인은 오른손을 다리 옆에 두어 옷자락을 살짝 쥐고, 왼손은 복부 앞에 두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불상의 전통적인 도상과 형식에 복고적인 요소를 더하여 고려 불교문화의 다양성을 반영한 마애불이다. 이 상의 제작 배경은 고려 전기 중흥을 이루었던 삼천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제작 시기는 고려 전기인 11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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