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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고려
관련 유물 서울 보타사,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은 북한산 남동쪽 줄기인 개운산에 있다. 개운산은 북악산 동쪽 산자락인 정릉 일원에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지로, ‘안암(安岩)’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마애불이 있는 보타사는 개운산 남동쪽 골짜기 안쪽에 있다. 보타사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19세기 지도에는 이 위치에 ‘보락원(普洛院)’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마애보살상은 사찰 후방을 둘러싼 바위의 남서향면에 새겨져 있다. 전체 높이는 503㎝이며, 광배와 대좌는 갖추지 않았다. 보살상의 보관 상부에는 바위가 마치 덮개와 같은 형태로 튀어나와 있어 보관 윗부분의 조각은 생략되었다. 바위 주변에는 장방형 홈들이 있어, 과거에는 전각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살상은 긴 관대와 장식이 달린 원통형 보관을 쓰고 낙액(珞腋)과 천의를 착용하였다. 장신구로는 간단한 무늬가 새겨진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체로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유사하다. 보타사 상과 옥천암 상은 동일한 형식의 보관과 착의법을 보이고 있으며, 손의 위치도 비슷하다. 다만 보타사 상의 장신구와 세부 표현이 옥천암 상에 비해 단순하며, 보타사 상이 보다 평면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두 상의 수인 역시 손의 방향은 비슷하지만 옥천암 상이 오른손 중지를 구부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보타사 상은 검지를 구부리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상은 비슷한 규모, 보관과 착의법 등의 동일한 형식, 둥근 얼굴에 입이 작게 표현된 상호의 표현까지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따라서 옥천암 상과 보타사 상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이 새겨진 바위면의 왼쪽에는 여러 개의 명문곽이 있는데, 대부분은 현대에 작성된 것이다. 이 중 보살상의 왼쪽 무릎 옆에 새겨진 명문곽은 위패 형태를 띠고 있으며, “忉利會上聖賢衆/南無⾦剛會上佛菩薩/擁護會上神祇等”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글은 신중작법(神衆作法)에서 사용하는 권청문(勸請文)이다. 명문이 새겨진 위패는 상부에 연잎형 지붕을 얹고 연화 좌대를 갖추었으며, 양 측면에는 당초문과 같은 형태의 덩굴 줄기가 각 한 줄씩 흘러내리는 있다. 마애보살상은 이 위패형 명문곽이 고려 동종에 새겨진 문양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이 명문의 내용을 근거로 이 보살상을 12~13세기에 제작된 제석천상(帝釋天像)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 상의 제작 시기를 11-12세기로 보고, 이 시기 고려 왕실의 삼각산 불교 후원이 조성 배경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와 같이 이 상은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함께 제작 시기, 존명 등에 대해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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