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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고려
관련 유물 서울 옥천암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은 북한산 향로봉에서 정남쪽으로 뻗은 산자락 남쪽 끝에 위치한다. 마애보살좌상 전방으로는 홍제천이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인왕산과 마주보고 있다. 현재 알려져 있는 ‘옥천암(玉川庵)’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기록에서 찾을 수 있으며, ‘옥천산방(玉泉山房)’으로도 불렸다. 조선 후기 이전의 사찰 명칭이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홍제천변에 위치한 이 마애보살좌상은 지역의 명소로 인지되어 온 듯하다. 성현(成俔, 1439~1504), 허목(許穆, 1595~1682) 등은 북한산과 홍제천, 인왕산 일원을 유람하며 적은 글에서 이 상을 ‘불암(佛岩)’, ‘석관음(石觀音)’이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상의 전면에 흰색 호분이 칠해져 있어 ‘보도각백불(普渡閣白佛)’로도 불렸다. 특히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옥천암’ 위치에 흰색으로 채색된 보살상이 그려져 있어, 조선 후기 보살상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현재 마애보살좌상 전면을 덮고 있는 ‘보도각(普渡閣)’은 1896년 명성황후(明聖皇后)의 후원으로 지었다고 하며, 그 현판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글씨로 전한다. 마애보살좌상은 산자락을 따라 굽이치는 홍제천변에 우뚝 솟은 바위의 남쪽 면에 새겨져 있다. 전체 높이는 487㎝이며, 광배와 대좌는 별도로 새겨지지 않았다. 보살상은 백색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머리카락, 눈, 장신구 등은 금색, 주색, 흑색 등으로 그려 넣었다. 둥근 얼굴에 뺨이 부풀어 있으며, 이목구비는 작고 약간 가운데로 몰려 있다. 머리에는 전면이 세 갈래로 나뉜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낙액과 천의를 걸치고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이 상은 보살상의 전통적인 착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10~11세기에 조성된 보살상의 대다수가 여래의 복식인 대의를 착용하였다는 점과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착의 방식과 원통형 보관, 장신구 등의 요소는 중국 요(遼)의 불상 양식이 전해지면서 나타나는 변화로 생각된다. 특히 이 보살상의 보관 양옆에는 긴 관대가 뻗어나와 있고, 여기에는 구슬과 고리로 이루어진 장식이 달려 있다. 이러한 모양의 보관 장식은 우리나라 보살상 중에서는 이 상과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이외에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서, 두 상의 밀접한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은 고려 후기, 또는 12~13세기 제작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상호의 표현, 중국 요 양식의 영향이 엿보이는 보관과 착의법 등의 요소로 보아 12세기보다는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11세기 중반~12세기 전반 고려 왕실의 남경(南京) 경영과 삼각산 불교 후원이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의 조성 배경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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