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사항 | 보물 |
|---|---|
| 제작 시기 | 통일신라 |
| 관련 유물 | 대구 동화사,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 |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은 동화사에서 남서쪽으로 약 650m 떨어진 봉황문 인근에 있다. 마애불의 위치는 동화사로 진입하는 입구에 해당하며, 당간지주와는 약 800m 거리이다. 마애불이 속한 동화사는 우리나라 유가업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832년(흥덕왕 7)에 심지(心地)가 영심(永深)에게 간자(簡子)를 얻어 세운 사찰이다. 동화사는 통일신라 후기 창건 이래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팔공산의 주요 사찰로서 위상을 떨쳤다. 동화사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많은 석조유물이 전하며, 특히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는 863년(경문왕 3)의 명문이 있어, 비로암의 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편년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애불은 봉황문 남서쪽에 높게 솟은 바위면에 새겨져 있으며, 지면으로부터 3m 정도 높이에 있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면은 북서향이며, 바위와 인접하여 흐르는 동화천을 바라보고 있다. 광배에서 대좌에 이르는 전체 높이는 255.6㎝이며, 불신은 123.8㎝이다. 나발의 머리에 육계는 낮고 넓으며,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를 작게 새겼다. 대의는 양 어깨를 덮고 있는데, 왼쪽 어깨에 끈으로 고정된 가사자락이 삼각형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가슴에는 내의와 군의 띠매듭이 드러나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왼손을 복부에 둔 항마촉지인에 가깝다. 이 상에서 특이한 것은 좌세(坐勢)로, 일반적인 통일신라 여래상이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오른쪽 다리를 대좌 위쪽으로 편안하게 내린 반가(半跏)에 가까운 자세를 취하였다.
광배는 두광, 신광을 갖춘 거신광으로, 이중 테두리를 지닌 원형 두광과 신광 둘레를 화염문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대좌는 통일신라 마애불에서는 보기 드문 삼단 대좌인데, 상대는 꽃잎이 화려한 화문으로 장식된 앙련이며, 중대는 각 면에 안상문이 새겨진 팔각 대좌를 평면화하여 새겼다. 특이한 것은 하대에 복련 대신 왼쪽으로 긴 꼬리를 형성하고 있는 구름을 새기고 있는 점으로, 연화대좌에 앉은 부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은 사찰을 오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신성한 영역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위치 선정은 우리나라 마애불로서는 드문 것으로, 홍성 용봉사 마애불, 홍성 상하리 마애보살입상,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등 극히 적은 사례만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상이 취하고 있는 반가의 자세와 대좌 아래의 구름 형상은 통일신라 여래상으로서는 유일한 사례로서, 하생하는 미륵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 상은 양식적으로는 통일신라 9세기 후반 불상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 상호, 대좌와 광배의 장식적인 요소들은 동화사 경내에 있는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유사성을 보인다. 따라서 이 마애불은 동화사가 중흥을 이루었던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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