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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고려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은 금오산 정상부의 백운봉 동쪽 암벽에 새겨져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문헌에 언급된 ‘보봉사(普峰寺)’의 터로 알려진 곳이다. 마애불 주변에는 암반 사이의 좁은 공간이 있고, 기와편 등 고려-조선시대 유물이 소량 산포되어 있다. 이곳이 고려시대에도 ‘보봉사’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애불과 유물의 존재로 미루어 고려시대 이후부터 신앙처였던 것 같다. 마애불은 산 정상부에 솟은 기암절벽 남향면의 튀어나온 모서리에 조각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550㎝이며, 대좌와 광배를 갖추었다. 머리 위의 육계가 상투처럼 높고 크게 솟아 있어 ‘보살상’으로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보관의 흔적이 없어 편단우견으로 대의를 착용한 여래상으로 판명되었다. 마애불은 전체적으로 고부조인데, 모서리 부분을 활용하여 입체적인 효과가 극대화되어 있다. 다만 광배는 얕게 부조되어 있고, 옷주름 표현 등 하반신으로 내려갈수록 얕게 조각되어 있다. 마애불의 오른손은 허벅지 옆에 두어 옷자락을 살짝 잡은 모습이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왼손의 수인은 여원인(與願印)과 유사하지만, 오른손의 형태가 일반적인 시무외·여원인과는 다르다. 이는 고려시대 이래 새롭게 유입되거나 변형된 도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입상의 여래상이 편단우견의 착의법을 취한 사례는 통일신라시대까지 종종 확인되나, 마애불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형식이다. 착의법은 통일신라 불상의 요소들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지만, 왼손 옆으로 흘러내리는 옷자락이나 신체 전면의 옷주름은 다소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불상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으로 구성되었다. 두광은 상-하로 긴 타원형을 이루며, 가장 바깥쪽 테두리는 위가 뾰족한 보주형을 이루고 있다. 신광은 두광 중앙에서 하반신까지 간격이 넓은 이중 테두리로 얕게 양각하였다. 대좌는 튀어나온 모서리 부분에 입체감 있는 복련으로 표현하였는데, 각 연판문 내에 화문(花文)이 장식되어 있다.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은 마애불로는 그 예가 드문 편단우견의 여래입상으로서, 두부와 상반신의 풍부한 양감 표현, 신체의 윤곽을 곡선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 등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평면화되고 도식화된 옷주름, 변형된 수인 등에서 변화된 시대 양식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마애불은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판단되며, 고려의 통일을 전후한 10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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