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사항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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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시기 | 통일신라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은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중턱에 있다. 삼릉계는 경주 남산의 서쪽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골짜기로, 경주 삼릉에서부터 시작되는 골짜기 초입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10곳 이상의 불교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이곳은 ‘삼릉계 제3사지’로 지칭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북쪽 능선 방향으로 약 50m 가량 떨어진 곳에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이 있다.
마애불은 삼릉 정상부로 향하는 등산로 옆에 길게 돌출된 암반의 서향면에 새겨져 있다. 이 바위는 크게 두 덩어리로 갈라져 있는데, 남-북으로 나뉜 바위면에 각각 불·보살 삼존이 선각 되었다. 선각은 거친 바위면을 다듬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졌음에도 그림을 옮겨놓은 듯 뛰어난 솜씨를 보인다. 남쪽 바위는 너비 3.58m, 높이 4m 정도이며,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공양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북쪽 바위는 남쪽 바위보다 3m 정도 뒤에 있으며, 너비 7.27m, 높이 4m이다. 이 바위에는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 우에 보살입상이 시립한 여래삼존을 새기고 있다. 한편 마애불 상부에는 전각을 설치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방형 홈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바위면의 중앙부는 오목하게 파내어 물이 고이지 않도록 물길을 조성하였다.
남쪽 바위에 새겨진 여래입상은 편단우견으로 대의를 착용하였고, 연화대좌를 딛고 서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위로, 왼손을 복부 아래로 내려 두 손바닥이 마주보도록 했다. 이러한 수인은 거의 보기 드문 형식으로, 통일신라시대 뿐만아니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일치하는 모양을 찾기 어렵다. 다만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의 경주 남산 왕정곡 출토 석조여래입상 등 일부 상에서 이와 비슷한 손모양을 찾을 수 있지만, 오른손의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여래상 양옆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여래에게 공양물을 바치는 공양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보살상은 모두 머리를 묶어 높게 상투를 틀고 단순한 띠 형태의 보관을 착용하였으며, 어깨를 덮은 천의 자락을 양팔에 감아 걸치고 있다. 이와 같은 보살상의 모습은 8세기 이후 통일신라 보살상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보살상이 들고 있는 지물은 연꽃, 또는 접시에 담긴 공양물로 추정된다. 남쪽 바위면에 새겨진 여래삼존은 본존의 수인 뿐만아니라 공양물을 바치는 보살상의 모습 역시 이례적이다.
북쪽 바위에 새겨진 여래삼존은 양 어깨를 덮는 방식으로 대의를 입은 여래좌상과 여래 방향으로 몸을 살짝 기울인 보살입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래는 오른손을 가슴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을 복부에 두고 있다. 이는 계곡 정상부에 있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과 동일한 수인이다. 좌, 우에 협시한 보살상은 남쪽 바위의 보살과 거의 동일한 착의 형태를 보이는데, 지물 없이 한 손을 가슴에, 한 손을 다리 앞에 두고 있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은 구성이 전혀 다른 삼존을 같은 공간 안에 구성하고 있다. 이는 각 방위의 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이 하나의 공간에 모셔져 있는 사면불과 같은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애불의 조성 시기는 신체 비례, 착의법, 장신구 등의 요소로 보아 8세기 후반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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