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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지정 사항국보
제작 시기통일신라
관련 유물경주 칠불암, 석탑재, 치석재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경주 남산 봉화곡 상류에 있다. 봉화곡은 동남산 일원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이며, 봉화대의 존재로 인하여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마애불상군은 칠불암 경내에 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불리는 ‘칠불암’ 명칭은 총 7구의 불·보살상이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 과거 이 주변에서 ‘사◯사(四◯寺)’명 와편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사찰명을 유추하기는 어렵다. 현재 사지 내에는 마애불상군을 비롯한 석탑재, 석등재, 치석재 등 다수의 석조유물이 산재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들도 다수 발견된다. 또한 화강암에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을 새긴 석경(石經) 5점이 출토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편, 칠불암 마애불상군의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가파른 암벽 능선상에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있다. 두 마애불의 거리는 불과 30m 정도이다. 마애불상군은 동향의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삼존불과 그 앞에 배치된 사면불 석주를 통칭하는 것이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아래에는 2단의 석축이 조성되어 있으며, 삼존불 배면과 측면, 사면불 석주 상면에 홈이 있어 목조가구를 결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래좌상과 2구의 협시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은 모두 연화대좌와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있다. 삼존불 최대 높이는 431㎝이며, 모두 고부조로 제작되었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면은 상부에서 안쪽으로 오목하게 새겨 조각면을 마련하였고, 상부는 끝을 뾰족하게 하여 불·보살상 전체를 아우르는 거신광과 같은 형태로 다듬었다. 본존은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큼직하며, 얼굴은 방형에 가깝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며 착의법은 편단우견인데, 다리 사이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옷자락이 구불구불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상의 수인과 착의법, 다리 사이에 펼쳐진 부채꼴 형 옷자락 형식은 석굴암 본존불에 이르러 그 정형을 확립하는 요소로서, 석굴암 이전 시기 통일신라 여래좌상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은 크기와 자세가 좌우 대칭에 가깝다. 두 상 모두 치마를 입고 천의와 낙액을 걸쳤으며, 삼면보관, 목걸이, 팔찌와 허리띠 등의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이처럼 보살상은 거의 동일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지물과 세부 표현에서는 차이가 있다. 우협시보살상은 내려뜨린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있으며, 허리띠 중앙에 방형 고정 장치가 있다. 이에 반하여 좌협시보살상은 가슴 앞까지 든 오른손에 한 송이 연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허리띠는 중앙에서 리본 모양으로 묶어 매듭지었다. 이 두 보살상은 몸을 비튼 삼굴자세(三屈姿勢), 풍부한 양감과 장신구 표현 등에서 중국 성당(盛唐) 양식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며, 719년경에 제작된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양식적으로 유사성을 보인다. 보살상은 보관에 별도의 표식이 없어 존명을 확정하기 어렵지만, 본존이 항마촉지인을 취한 석가여래로 추정되므로 그 협시인 문수·보현으로 비정할 수 있다. 삼존불 앞에 약 1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사면불 석주 각 면에는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상들은 모두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연화대좌에 앉아 있으며, 양 어깨를 덮는 방식으로 대의를 착용하고 있다. 각 방위에 따라 불상의 손모양과 세부 표현에 차이가 있지만, 동면 상은 약합을 들고 있으므로 약사여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주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뛰어난 제작 기술과 예술성을 갖추고 있어 통일신라 8세기 전반 불상 양식의 정수(精髓)이자 통일신라 마애불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특히 삼존불과 사면불 석주가 결합된 독특한 구성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이 상의 존명에 대해서는 사면불과 본존불을 합친 오방불로 조성되었다는 밀교(密敎) 관점에서의 견해, 본존 석가와 약사, 석가, 아미타, 미륵이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한편 사지에서 발견된 석경 중에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이 경전을 근거로 석가삼존과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한 석주를 조성하였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또한 마애불상군은 곳곳에 있는 목조가구 흔적을 근거로 마애불을 둘러싼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마애불상군의 구조가 중심주굴과 같은 석굴사원 형태였으며, 벽면에 《약사경》 석경을 배치하여 석주 주변을 돌며 의식을 행하였던 공간이라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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