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통일신라
관련 유물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남산 금오봉 남쪽 능선상에 있다. 이곳은 서남산 중앙을 가로지르는 용장골의 최정상부에 해당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현유가해화엄(賢瑜伽海華嚴)조에 따르면 용장사(茸長寺)는 신라 경덕왕대에 활동하였던 학승 대현(大賢, 太賢)이 주석하였던 사찰이라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보아 사찰은 8세기 중엽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장사지에는 독특한 삼륜대좌를 지닌 석조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마애불은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의 뒤쪽 바위에 남향으로 새겨져 있다. 광배와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152㎝이다. 머리는 나발이며, 낮고 폭이 넓은 육계가 솟아 있다. 둥근 얼굴에 이마가 좁으며, 뺨이 약간 부풀어 있다. 어깨와 가슴은 넓고 허리는 가늘며, 결가부좌한 양다리의 윤곽이 또렷하다. 옷자락이 신체에 밀착된 듯 표현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신체의 윤곽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다리 아래로 뻗고 왼손은 복부에 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한편 대의자락은 양 어깨를 덮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에는 부견의(覆肩衣)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옷주름은 신체 전면을 촘촘하게 덮고 있는데, 간격이 거의 일정하며 층단식을 이루고 있다. 광배는 이중의 원형 두광과 신광이 결합된 형태이며, 대좌는 겹꽃잎이 표현된 앙련이다. 마애불은 안정적인 신체 비례, 나발과 낮게 솟은 육계, 양감이 풍부하고 윤곽이 뚜렷한 신체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양식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하반신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입체감이나, 다소 도식화된 촘촘한 옷주름 표현 등으로 볼 때 전성기인 8세기 중엽 보다는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마애불의 신광 오른쪽에는 세로 3행의 명문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육안으로 거의 찾기 어렵다. 명문은 “佛(像?)成爲□□/□尉(阿?)弥(?)□/太平二年八月”로 판독되었다. 명문 중의 ‘태평’은 송(宋)의 연호인 ‘태평흥국(太平興國)’, 또는 요(遼)의 연호인 ‘태평(太平)’으로 추정되며, 이를 토대로 보면 해당 연대는 977년(고려 경종 2) 또는 1022년(고려 현종 13)이다. 그러나 해석되고 있는 연대는 통일신라 8세기 후반의 경향을 보이는 마애불의 양식 특징과 맞지 않아, 명문이 후대에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관련기사

관련자료

  •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명문
    금석문 977년(고려 경종 2) 또는 1022년(고려 현종 13) 추정 상세정보
  • 더보기  +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