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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통일신라
관련 유물 경주 골굴사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은 함월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다. 이곳은 감포에서 경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무장산, 서쪽으로는 토함산과 연결된다. 골굴사는 조선시대에 ‘골굴암(骨窟庵)’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한 암반 상에 많은 바위굴이 뚫려 있는 석굴사원으로 유명하였다. 조선 후기의 화첩(畫帖)인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 중 〈골굴석굴도(骨窟石窟圖)〉에는 지붕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마애불 주변에 여러 개의 홈이 남아 있어 과거에는 전각이 씌워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은 여러 개의 자연 석굴이 뚫려 있는 거대한 암반의 최상부에 있다. 이 암반은 안산암질 응회암으로, 자연적으로 생겨난 여러 개의 석굴이 있다. 마애불은 무른 재질의 암반면을 감실과 같은 형태로 파내고 그 내부에 불상을 새긴 것이다. 암반의 무른 재질 때문에 마애불 곳곳은 풍화로 인한 박락과 훼손이 진행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높이는 광배를 포함하여 317㎝이다. 불상은 대체로 고부조되어 있으며, 머리 부분이 가장 두껍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조각이 얕아진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가 넓고 높게 솟아 있다. 둥근 얼굴에 눈썹이 짧고 눈이 길게 찢어진 모습이며, 인중이 짧고 입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얼굴은 턱과 뺨에 살집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9세기 불상에서 보이는 비만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대의는 양 어깨를 덮고 있는데, 파손이 심하여 정확한 착의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옷주름은 상반신에서 하반신에 이르기까지 평행한 간격을 이루며 층단식으로 조성되었는데 다소 도식화된 모습이다. 현재 오른손은 파손되어 정확한 수인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왼손은 복부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광배는 연화문 두광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 그 주위에는 화염문이 불규칙하게 새겨져 있다. 각각의 화염문은 한 줄의 음각선으로 깊게 새겼는데, 고사리 모양으로 끝이 말려 있고 꼬리 부분은 불규칙한 곡선을 이루며 상승하고 있다. 대좌 부분은 파손되어 확인이 어렵다. 다만 하반신에 흘러내린 옷자락 아래쪽에 구름꼬리 모양의 작은 조각이 있는데, 이는 대좌와 관련된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은 돌출한 짧은 인중, 작은 입, 층단을 이루는 옷주름 표현 등으로 보아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애불은 안타깝게도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장엄함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9세기 이후 본격화되는 마애불의 거대화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 상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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