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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지정 사항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제작 시기 고려
관련 유물 김해 금선사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은 서낙동강 북변에 있는 작은 구릉에 있다. 마애불 남쪽으로는 하중도(河中島)인 중사도(中沙島)가 있으며, 지금은 주변 지역이 모두 간척되어 도시화되어 있지만 원래는 강과 가까운 곳이었다. 낙동강 하구는 예부터 경상도 내륙과 해상 교통을 연결하는 중요한 수운 교통로로 활용되어 왔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12조창(漕倉) 중 하나인 합포(合浦) 석두창(石頭倉)과 육상의 역로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마애불이 낙동강변에 조성된 배경은 낙동강과 남해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는 ‘초선대(招仙臺)’, ‘초현대(招賢臺)’라 불리는데, 가락국(駕洛國)의 전설이 깃든 고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기록된 전설에 따르면, 가락국 거등왕(居登王)이 칠점산(七點山) 담시산인(旵始山人)을 초청하니 담시가 배를 타고 거문고를 가져와서 서로 더불어 즐겼으므로 바위 이름을 초현대라 하였고, 왕이 앉았던 연화석과 바둑판 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실제 마애불 뒤쪽으로 이어진 구릉 상부에는 넓고 편평한 바위가 있어 강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한편 조선 후기에 작성된 읍지(邑誌)에는 초현대 관련 기록에 ‘대인상(大人像)’, ‘대인형(大人形)’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이는 초현대에 새겨진 이 마애불을 지칭하는 것이다. 마애불은 암반의 서향면에 새겨져 있으며, 광배에서 대좌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각으로 조성되었다. 전체 높이는 510㎝이다. 신체의 윤곽, 대좌, 광배 모두 기본적인 형태에 충실하게 새겨졌다. 다만 대의 옷깃에 화문을 새기거나 옷자락을 구불구불하게 표현한 부분에서 장식성이 엿보인다. 마애불은 가슴 앞에 모은 양손을 옷자락으로 가리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단독 상보다는 다수의 불상과 함께 조성되는 경우 더욱 선호되었지만, 고려시대에는 남한강변에 조성된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좌상, 전라도 지역의 석불 등에서 단독 조상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은 거대한 규모, 방형에 가까운 상호와 장대한 느낌의 신체 표현 등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선각, 광배와 대좌 등의 세부 표현에서는 간소하게 변화된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원형 두광과 신광을 강조한 광배 표현,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된 옷자락 등은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상의 특징과 입지를 함께 고려하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의 제작 시기는 12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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