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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고려 또는 조선(1471년)
관련 유물 파주 용암사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파주 광탄면 장지산 중턱의 거대한 암반에 새겨진 2구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이 있는 곳에는 현재 용암사(龍巖寺)가 운영되고 있다. 용암사와 마애이불입상이 있는 장지산 자락은 서울에서 고양, 파주를 거쳐 개성 방면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상에 입지한다. 이곳은 ‘혜음령(惠陰嶺)’이라 불리는 고갯길의 북쪽에 해당하며, 인접한 곳에 12세기에 건립된 원관사찰(院館寺刹) 혜음원(惠陰院)이 있고 비슷한 기능을 지닌 광탄원(廣灘院) 역시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마애불의 조성 배경은 개성(개경)-한양(남경)을 잇는 주요 교통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규모를 갖춘 이 마애불은 혜음령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혜음령을 넘는 여정 중에 보았던 마애불의 모습을 글로 남기기도 하였는데, 두 불상이 병립한 모습을 ‘쌍미륵(雙彌勒)’, ‘쌍불(雙佛)’ 등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마애이불입상은 14m를 조금 넘는 거대한 규모의 상으로서 2구의 여래입상이 나란히 서 있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두 불상은 암반의 굴곡에 따라 마치 앞, 뒤로 서 있는 듯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 불상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제작 방식은 부조와 환조가 결합된 것이다. 거대한 바위 전면에는 불상 2구의 신체를 부조하고, 두부는 별도의 석재를 중첩하여 환조로 조성하였다. 두 불상의 머리 위에는 역시 별도의 석재로 제작한 보개가 얹어져 있다. 두 불상은 모두 양 어깨를 덮는 방식으로 대의를 착용하였으며, 내의를 입고 있다. 배 중간에는 군의를 묶는 띠매듭이 새겨져 있다. 두 상은 착의법, 제작 방식 등에서는 공통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수인과 보개 모양에 차이가 있다. 오른쪽 상은 왼쪽 상보다 크고 보개가 원형이다. 오른손은 연꽃 가지를 들고, 왼손은 연꽃봉오리 끝부분을 쥐고 있다. 현재 왼손에 쥔 연꽃봉오리 부분은 결실되었지만, 손 윗부분에는 원형 홈이 남아 있어 별도의 석재 또는 금속제로 지물을 제작하여 끼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비하여 왼쪽 상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합장하고 있으며, 보개는 직사각형이다. 두 상의 존명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왼쪽 상은 다소 뒤로 물러난 듯한 조각 위치, 합장인의 수인이 불상에서는 이례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보살 또는 공양자와 같은 협시의 개념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오른쪽 상은 거대한 규모에 연꽃봉오리를 지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미륵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한편, 마애불 우측 바위 측면과 왼쪽 불상의 하반신 부분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바위 측면의 명문은 명문곽에 새겨졌으며, 왼쪽 불상 하반신의 명문은 별도의 명문곽 없이 옷자락에 직접 새겨져 있다. 특히 왼쪽 불상 하반신의 명문은 1995년에 새롭게 확인된 것인데, 박락이 심하여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확인된 명문에서는 ‘성화(成化) 7년’, 즉 1471년이라는 연대와 함양군(咸陽郡) 등 왕실 종친, 화주(化主) 혜심(惠心) 스님을 비롯하여 관료와 시주자들의 명칭이 나열되어 있다. 명문 후반부에는 세조(世祖, 재위 1455~1468)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구절이 있어, 이 발원문의 주요 목적이 세조를 위한 추선(追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애이불입상은 명문의 발견 이전까지는 고려시대, 특히 11세기 후반~12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는 마애불의 거대한 규모와 저부조, 환조를 병행한 제작 방식, 상호 등이 고려시대 마애불의 전형적인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고려 선종(宣宗, 재위 1083~1094)이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중 왕의 후궁인 원신궁주의 현몽으로 불상을 조성한 후에 한산후 윤(漢山侯 尹)을 얻었다는 설화를 비롯하여, 혜음원과의 인접성 등을 근거로 조성 시기를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명문 발견 이후에는 1471년 조선 왕실 주도의 불사를 통해 마애불이 조성되었다는 견해가 새롭게 제기되었다.
〈명문 1〉 成化七年七月 發願文 願此同類見佛土不向三(世)三有閣 直入西方九品中自他一時成正覺 又願彌勒龍華之中類在初會作上(之) 正法 貞敬夫人李氏 一人有慶 大妃無憂 大比丘尼道明 大施主咸陽君 化主惠心 泰仁郡夫人李氏 梁氏 大施主上護軍沈長己 金氏 通津安氏 潘南朴氏 前中興寺住持大師△△僅雲△惠大師 副正柳安 善韓氏 上護軍李孝志兩主 司直鄭仏仲兩主 忠贊衛金仲山兩主 司直許繼智兩主 李氏崔知 正兵金德守兩主
〈명문 2〉 當來彌勒如來大聖 世祖大王往生淨土
〈명문 3〉 主上殿下壽△△
※ 명문 출처 이경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병립상의 조성시기와 배경」, 『불교미술사학』 제3집, 2005; 이경화, 「한국 마애불의 조형과 신앙-고려·조선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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