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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교산동 마애여래좌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977년(고려 경종 2, 중수)
관련 유물 하남 선법사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남한산의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객산의 서쪽 산자락에 위치한다. 마애불은 현재 선법사 경내에 있는데, 과거에는 마애불 주변에서 옛 기와편과 석등재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마애불이 있는 선법사 일원은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은 높이 2m 가량의 암반면에 새겨져 있으며, 대좌와 광배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92㎝이다. 편평한 바위면 중앙에 불상 윤곽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조각 두께 1-2㎝는 가량으로 얕다.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 방식으로 대의를 착용하고, 왼손에 약합을 받들고 있는 약사여래이다. 불상의 대좌는 상·중·하대를 갖추고 있으며, 중대석에 기둥을 새겨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대좌 형태인 삼단 팔각 연화대좌를 형상화하고 있다. 대좌는 괴임과 받침, 연꽃잎의 무늬까지 섬세하게 새겼으며, 상대 앙련은 원근감을 주어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하였다. 광배는 두광, 신광 모두 원이 삼중으로 중첩된 형태이며, 그 외연은 화염문이 감싸고 있다. 이러한 광배의 형태는 9세기 후반-10세기 무렵 중국 당말(唐末)~오대(五代) 불상의 양식과 관련이 깊으며,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의 광배와 유사하다. 또한 마애불은 옷주름, 신체 윤곽, 대좌 연판문 등의 세부를 양각선으로 처리하여 회화적인 표현을 두드러지게 한 것이 특징이다. 마애불의 우측 하단에는 “太平二年丁丑七月廿九日古石/佛在如賜乙重脩爲今上/皇帝万歲願”로 판독되는 명문이 있다. 명문 내용은 ‘태평 2년 정축년 7월 29일에 옛 석불이 있던 것을 중수하니, 지금의 황제께서 만세토록 사시기를 기원합니다.’로 풀이할 수 있다. ‘태평(太平)’은 중국 송(宋) 태종(太宗, 재위 976~997)대의 연호인 태평흥국(太平興國, 976~984)으로, ‘태평이년(太平二年)’은 고려 경종(景宗, 재위 975-981) 2년인 977년에 해당한다. 명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옛 석불을 중수하였다.’는 내용으로, 977년은 불상의 ‘중수(重修)’ 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쳐 조성했다고 보기에는 불상 조각이 얕고 암반 주변에 고친 흔적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중수’의 의미를 마애불이 아닌 주변 전각에 대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명문에서 주목해 볼 수 있는 내용은 ‘계시었던’의 의미로 해석되는 이두(吏讀) ‘재여사을(在如賜乙)’이 사용이다. 또한 고려의 ‘皇帝’ 칭호가 경종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기록도 확인된다. 이처럼 명문은 작성 시기, 조상(造像) 목적과 경위 등을 자세히 밝히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두 병용, 황제 칭호 사용 등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기반 아래에 도상, 형식, 회화적 요소 등의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여 새롭게 해석된 10세기의 마애불이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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