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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지정 사항 보물
제작 시기 고려(981년)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은 이천시 서쪽에 있는 설봉산과 저명산 사이의 길가에 위치한다. 이곳은 산 사이로 흐르는 장암천을 따라 경기 동남부와 충청북도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지금도 주요 고속도로와 간선도로가 이 인근을 지나고 있다. 보살상의 위치는 고려-조선시대 불교 유적이 밀집해 있는 설봉산의 남서쪽 아래에 해당한다. 마애보살상은 들판 한 가운데 솟은 바위의 남쪽면에 새겨져 있다. 보살상이 새겨진 바위 높이는 3.1m, 보살상 높이는 253.6㎝이다. 조각은 전체적으로 얕게 부조되었지만, 얼굴과 다리 부분이 튀어나오도록 새겨 부분적으로 입체감을 살리고 있다. 보살상은 의자에 걸터 앉아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반가(半跏)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어깨에 천의를 걸치고 있으며, 팔과 목에는 단순한 형태의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보관은 중앙 부분이 측면보다 높으며, 머리 전체를 감싸는 원통형이다. 보관 중앙에는 연판문과 같은 형태의 장식이 있고, 그 중앙에는 화불이 작게 새겨져 있다. 지물로 들고 있는 연꽃가지는 활짝 핀 형태의 연꽃과 봉오리 형태의 곁가지, 그리고 연잎이 붙어 있는 모양이다. 이 보살상은 보관에 화불이 있는 점으로 보아 관음일 가능성도 있지만, 지물인 연꽃가지를 ‘용화(龍華)’로 해석하여 존명을 미륵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또한 연화족좌를 딛고 반가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보살상의 자세 역시 미륵의 도상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기록이 없어 명확하지는 않으나, 이 상의 존명은 미륵보살일 가능성이 있다. 바위 뒷면에는 이 상의 제작 시기와 제작 주체 등을 알 수 있는 명문이 있다. 명문은 “太平興國六年辛巳二月十三日/元▧▧道俗香徒十(太?)廿人/上首▧人二▧▧”로 판독되는데, 가장 첫머리에 적힌 “太平興國六年”은 고려 경종(景宗, 재위 975~981) 6년인 981년에 해당한다. 명문은 군데군데 판독이 어렵지만, ‘도속 향도(道俗 香徒)’와 같은 표현으로 미루어 마애불의 조성에 일반 백성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은 명문을 통해 981년이라는 조성 시기와 제작 주체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원통형 보관, 연봉오리와 연꽃으로 구성된 연꽃가지, 반가의 자세, 발 아래에 마련된 2개의 연화족좌 등은 마애보살상이 조성되었던 10세기 후반 보살상의 도상 및 양식 흐름을 파악하는데 있어 기준을 마련한다. 이 상은 10세기 후반 무렵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도상과 양식이 지역 양식과 결합하여 고려화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년작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명문> 太平興國六年辛巳二月十三日」 元紙(?)▨道俗香徒十(太(?))廿▨人」 上首▨人二▨▨」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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