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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

지정 사항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제작 시기 고려 (1090년)
관련 유물 입석사, 입석사 석탑
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은 원주와 영월의 경계를 이루는 치악산(雉嶽山) 서쪽의 황골계곡 중턱에 있다. 마애불은 입석대(立石臺)라 불리는 기암괴석으로부터 30m 정도 떨어진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좌향은 남서향이다. 대좌와 광배를 포함한 마애불의 전체 높이는 141㎝이며, 불신은 88㎝를 조금 넘는 크기이다. 조각 두께는 5㎝ 내외의 저부조이다. 얼굴 부분을 가장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대좌는 얕은 두께로 양각하였다. 머리카락은 굵은 나발로 정연하게 새겨졌고, 육계가 완만하게 솟아 머리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육계 아래에는 큼직한 중간계주를 표현하였다. 대의는 왼쪽 어깨를 덮는 편단우견을 착용하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가 노출되는 일반적인 편단우견과 달리 대의 자락 일부를 걸친 방식이다. 불상의 가슴 사이에는 평행 방향의 옷단이 확인되는데, 군의 상단 또는 내의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굵은 나발, 낮은 육계, 중간계주, 변형된 편단우견의 착의법 등은 외래 양식의 영향을 받은 요소로 추정되며, 11세기 무렵 고려로 유입된 중국 송(宋)의 불상 양식과의 관련성이 엿보인다. 이 상과 같이 이국적인 형태의 머리 모양은 고려 불상 양식에서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지만,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磨崖如來倚坐像), 남원 노적봉 마애여래좌상 등 일부 마애불에서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 상에서 독특한 점은 연화대좌 아래에 ‘工’자형의 대좌를 얕게 양각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통일신라-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대좌 형태인 상·중·하대의 삼단 대좌를 간략하게 묘사한 것이다. 대좌의 우측에는 음각으로 각자(刻字)된 명문이 있다. 또한 불상의 왼쪽 무릎 옆에는 범자(梵字) 두 글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 마애불의 중요성은 대좌 측면에 새겨진 명문에 있다. 현재 판독되는 명문은 “元祐五年庚午三月日”이다. ‘원우(元祐)’는 북송(北宋) 철종(哲宗) 때인 1086~1094년에 사용된 연호로서, “元祐五年” 즉, 1090년(선종 7)에 마애불이 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애불이 제작되었던 11세기 후반에는 원주 법천사(法泉寺) 등을 중심으로 이 지역의 불교가 크게 중흥했던 시기이다. 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은 유례가 드문 고려시대의 기년작으로, 고려 전기 원주 지역의 불상 양식과 함께 새롭게 유입된 외래 양식이 적절히 반영된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높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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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 명문
    금석문 1090(선종 7)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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