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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애불

마애불(磨崖佛)은 바위 또는 암벽면에 새겨진 불상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마애불은 불상뿐만 아니라 보살상, 신장상 등 불교 신앙을 상징하는 도상을 새긴 조상을 통칭하는 것이다. 조각 기법으로 분류하면 마애불은 양각(陽刻) 부조(浮彫)에 속하며, 기법의 변화에 따라 음각(陰刻)인 선각(線刻)으로도 조성되었다. 마애불 성립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연 상태로 고정된 바위 또는 암반에 조성하는 것이다. 마애불은 인위적인 훼손,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위치가 변경된 경우가 아니라면 조성 당시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마애불의 특성은 제작 시기, 지역, 입지 등 환경적·사회적 조성 배경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마애불이 조성되었다. 불교가 유입되고 공인된 것은 4~5세기 무렵이다. 불교 전래 초기인 고구려, 신라, 백제에서는 각각 중국의 영향 아래 독자적인 특성을 지닌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다. 그러나 한반도에 마애불이 등장하는 것은 그보다 늦은 6세기 이후부터이며, 백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마애불이 조성되었다. 이후 7세기 무렵에는 신라 지역에서도 마애불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다만 고구려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삼국시대 마애불이 발견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백제의 마애불-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국가유산청
우리나라의 마애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태안 동문리 마애여래삼존입상이다. 이 두 마애불의 조성은 6세기 중국의 불상 양식과 석굴사원 형식이 우리나라 마애불 조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후 백제 땅에 조성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백제의 불상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서, 시무외·여원인의 여래입상, 봉보주(封寶珠) 보살상, 반가사유상이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구성이다. 이 상은 7세기 무렵 백제에서 유행하였던 도상을 집약하고 있어, 당시의 신앙 형태와 문화 교류 양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신라 지역에서는 7세기 무렵 경주와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마애불이 제작되었다. 특히 영주, 봉화, 충주와 같이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접경을 이루는 지역에 있는 마애불은 삼국 문화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삼국 문화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지역의 마애불들은 입지적으로도 특수성을 보이는데, 강과 가까운 곳에 있어 교통로와의 밀접한 관련성을 짐작케 한다.
신라의 마애불-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국가유산청
특히 7세기 무렵 수도 경주 지역의 마애불은 경주를 둘러싸고 있는 주요 산지에 분포한다.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은 신라 오악 중 하나인 단석산 중턱에 위치하며,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상은 성모신앙(聖母信仰)이 깃든 선도산 정상에 위치한다. 특히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은 불상뿐만 아니라 반가사유상, 보살상, 공양인물상 등의 다양한 모습과 함께 ‘신선사(神仙寺)’라는 사명이 포함된 명문을 지니고 있어 당시 신라 지역의 신앙 형태뿐만 아니라 복식사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와 같이 백제와 신라의 마애불은 중국 불교문화의 영향 속에서 제작되었지만, 각 나라의 문화 특성을 발현하며 차별화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통일신라의 마애불-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국가유산청

통일신라의 마애불-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박영민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석조 미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수의 마애불이 제작된다. 이 시기에는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마애불이 제작되어, 경주 남산뿐만 아니라 소금강산, 단석산, 낭산 등 경주 주요 산지 곳곳에 마애불이 분포한다. 8세기 무렵의 대표작은 통일신라 전성기 불교미술을 상징하는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이다. 석굴암 불교 조각을 정점으로 하는 통일신라의 석조 미술은 마애불에도 영향을 미쳐,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상과 같이 사실적인 경향의 마애불이 조성되었다. 한편 9세기 이후의 마애불은 수적으로도 증가할 뿐만아니라 공간적으로도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기 수도 경주에서는 남산을 중심으로 다수의 마애불이 조성되었으며, 동시에 경주 주변 지역의 조성 사례도 증가한다. 창녕 송현리 마애여래좌상, 창녕 감리 마애여래입상, 안동 옥산사지 마애여래좌상 등은 9세기 마애불과 불교문화의 지역 확산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경향은 같은 시기에 조성된 석불의 조성 경향과도 일치한다. 9세기 이후 마애불의 변화 양상은 도상과 제작 방식의 다양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801년(애장왕 2)의 기년명을 지니는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은 이전 시기에는 보기 드문 선각 기법을 주로 하여 제작되었으며, 약사삼존 도상으로서 당시 신앙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경주 남산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대구 팔공산 동봉 마애여래입상과 같이 산 정상부에 조성된 마애불 중에는 거대한 규모로 제작되는 사례가 증가한다. 이때부터 등장하는 마애불의 거대화 경향은 이후 고려시대 마애불의 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려의 마애불-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박영민
고려의 마애불-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박영민
고려시대는 어느 시기보다 많은 수의 마애불이 제작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던 마애불은, 고려시대에 이르면 전국에 확산되었다. 또한 규모 면에서도 전 시기보다 월등하게 큰 마애불들이 조성되는데, 특히 이러한 마애불들은 고려 국초 왕실의 권력과 위세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마애불은 명문이 있는 사례가 극히 적어 그 조성 배경이나 조성 주체 등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뛰어난 제작 방식을 보이는 마애불은 왕실과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들이 다수 확인된다.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등은 고려 전기 마애불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려의 마애불-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의 시선 ©박영민
고려의 마애불-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좌상의 시선 ©박영민
고려시대 마애불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산의 불교적 신성성이 강조되었던 통일신라시대와는 달리, 사람들의 삶과 조금 더 밀접하게 연관된 곳에 제작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다수의 마애불이 길과 가까운 산기슭, 강변 등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더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하게 된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은 지역과 지역을 잇는 주요 교통로에 있어, 길을 오가는 누구나 부처님의 가피 아래 평안한 여정을 기원할 수 있었다. 또한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 의성 생송리 마애보살좌상,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좌상과 같이 강나루 주변에 조성된 마애불은 뱃길의 안녕을 기원하며, 때로는 랜드마크(Landmark)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의 마애불은 삶과 밀접한 장소에 조성되어, ‘안민(安民)’에 더욱 집중한 고려 불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양산 통도사 자장암 마애아미타여래삼존상 ©박영민
조선시대에는 마애불의 조성이 앞 시기에 비해 크게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에는 조선시대의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이 분명한 마애불은 진도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을 제외하면 거의 찾기 어렵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교의 재건과 함께 마애불의 조성이 다시금 증가한다. 조선 후기의 마애불은 회화를 기반으로 명확한 도상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19세기 후반- 근대기 마애불 대부분은 명문을 수반하여, 조성 배경, 발원 주체 등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서울 학도암 마애보살좌상, 양산 통도사 자장암 마애여래삼존상과 같이 불화의 도상과 화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마애불이 제작되었다. 특히 이 시기의 마애불 제작에는 불화를 그린 화승(畵僧)이 참여한 것이 확인되는 작품도 있어, 회화와 조각 간의 도상·양식 공유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마애불은 중국 불교 석굴사원의 구현에서 시작하였지만, 시대를 거듭하면서 우리나라의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고 변화하여 ‘마애불’이라는 형식을 확립하였다. 한국 마애불은 도상·양식의 변화를 통해 한국 불교문화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지역에 따른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불교사, 미술사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 교통 등 다양한 정보를 품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 집필자 : 박영민(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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