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과 들에는 수많은 길 위에 남겨진 소원과 희망이 모여 기억된 기념물,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종교적 기도가 신과 영원한 약속처럼 바위에 새겨진 유산이다. 그 앞에 선 사람들은 힘겨운 날들 속에서 멀게만 느껴지는 삶의 희망을 부처님의 자비에 기대어 간절히 기원하였다.
한국에는 전국 곳곳의 바위에 새긴 불상, 즉 마애불이 많이 있다. 이러한 마애불 문화는 한국에 불교가 전해지고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 결과 마애불은 암벽에 불교 존상을 새기거나 입체물로 조각한 한국의 독특한 석조기념물이라는 단순한 조각 작품을 넘어 시대에 따라 종교와 문화의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산천에 새긴 세계유산 가치
마애불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상, 용도, 기법을 보여주는 총체적인 불교 문화의 유산이다. 각 시대와 문화의 발전 단계에 따라 마애불의 위치와 의미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장소, 종교적으로 신성한 곳, 또는 일반인들의 교통로와 같은 다양한 곳에 세워졌다. 이는 한국 마애불이 독특한 성소로서 자리하고 발전했음을 증명한다. 또한 마애불이 불교의 전래와 전파 과정에서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을 표현한 불교 유산인 동시에, 대중의 여러 희망을 담은 기도처로서 한국 불교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독특한 가치를 지닌 유산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여러 나라에도 마애불이 있지만, 한국에서 전국에 걸쳐 골고루 분포하면서 다양한 현황을 포함하여 발전한 독창적이고 탁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마애불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자리하면서, 불교 문화의 변화를 여러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어지는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즉,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801년)부터 인천 보문사 마애석불좌상(1928년)까지 한국의 오랜 역사 안에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는 마애불을 통해서 다양한 양식을 바탕으로 각 시대의 사상과 기법의 변화 단계를 볼 수 있다.
가장 평범한 자연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은 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경관을 창출해 냈다. 평면적인 선각에서 입체적인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었으며, 각 시대의 신앙에 따라 석가여래, 약사불, 아미타불, 미륵불, 관음보살, 그리고 치성광불 등 여러 존상을 그 존격에 맞게 표현하였다. 이 형식들은 각 시대에서 추구한 불교의 이상을 구현하여,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귀엽거나, 건장한 남성상으로 표현하거나, 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형식 등 시대의 예술 양식을 반영하였다. 이러한 마애불은 암벽의 자연스러운 굴곡을 활용하여 완전한 입체적 형식부터 간략하게 새긴 부조 형식까지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특히, 근엄한 불상과는 달리, 친근하거나 소박한 모습으로 산천에 쉽게 만날 수 있는 마애불은 한국 미술의 특징인 자연과의 조화를 잘 보여준다.
마애불, 대중과 함께 살아온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
한국의 마애불은 마을의 신앙 지킴이처럼 친근한 존재로 발전했으며, 한국 불교 문화의 시대적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자연 암벽과 환경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미학을 담고 있는 이 마애불들은 지역 문화와 불교의 교리 및 사상을 융합하여 종교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신앙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종교적, 문화적 중요성을 유지하며 신앙의 대상이 되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이다. 이 개념은 유산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활발히 사용되고 의미를 가지는 것을 강조한다.
‘살아있는 유산’에는 다음의 네 가지 주요 특징이 있다.
첫째, 지속성(Continuity):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거나 실천되면서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전통과 관습을 포함한다.
둘째, 변화와 적응(Change and Adaptation):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대적 맥락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셋째, 공동체 참여(Community Involvement): 유산 지역 공동체가 유산의 유지와 보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유산이 공동체의 정체성과 일상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넷째, 현재적 의미와 기능(Contemporary Relevance and Function):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문화에 통합되어 현재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가지는가.
이러한 특징들은 유산이 단순히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살아있는 유산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살아있는 유산' 개념에는 유 · 무형의 문화유산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가 적용될 수 있다.
마애불은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한국의 정치, 문화, 종교가 통합된 중요한 장소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보호하며 성소(聖所)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유산은 불교 신앙의 발전과 불교 문화의 확산을 보여주는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 단단한 화강암을 전통 기법으로 새긴 조각 기술은 인간의 창의성의 다양한 발현이다. 또한, 교통로를 따라 위치해 한국적 순례 문화의 또 다른 형태로 자리잡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불교문화의 동아시아 전파와 발전 단계를 증명하는 중요한 유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과제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하기 위해, 마애불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토대로 한 분석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특히, 진정성에 관한 평가 기준은 『베니스헌장(The Venice Charter)』(1964)과 『나라선언문(The Nara Document on Authenticity)』(1994)에 기반한다. 베니스헌장은 문화유산 보존과 복원에 관한 국제적 기준을 제시한 문서이며, 나라선언문은 문화유산의 진정성 개념을 확장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산의 진정성은 1994년 나라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2005년 발표된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서 8가지 속성을 유산 평가에서 고려한다. 8가지 속성은 1) 형태와 디자인(Form and design), 2) 재료와 물질(Materials and substance), 3) 용도와 기능(Use and function), 4) 전통, 기법, 관리체계(Traditions, techniques and management systems), 5) 위치와 주변 환경(Location and setting), 6) 언어 및 기타 형태의 무형유산(Language and other forms of intangible heritage), 7) 정신과 감성(Spirit and feeling), 8) 기타 내외부 요인(Other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이다.
한국의 마애불은 한국의 전 국토에 걸쳐서 자연 바위에 조각된 불상[재료와 물질·형태와 디자인]으로, 돌의 물리적 특성과 지역적 자원을 활용해 제작되었다. 마애불은 단순히 조각품이 아닌 한국 사람들의 신앙 중심지[무형가치]로 교통의 요지나 공동체의 중심지에 위치하였다[위치와 주변 환경]. 이러한 특징은 한국인의 종교적·정신적 신앙 대상으로 오늘날까지 문화적 연속성을 보유한 신성성을 유지하고 있다[용도와 기능]는 것이다. 더불어 대부분의 한국 마애불은 움직일 수 없는 큰 바위면에 조성되어 원래 조성된 장소에서 원형을 유지하면서, 시대 변천과 양식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아시아 마애불의 발전 과정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마애불이 국가 지정문화유산 또는 지방문화유산으로 보호바도 있으며,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마애불이 지닌 기본 속성을 명확히 분석하는 학술적 연구와 마애불에 접근할 수 있는 모빌리티(mobility)도 매우 취약하다. 그러므로 더욱 통합적인 연구 및 관리 계획의 수립을 통한 유산 가치의 정립이 기대된다.
· 집필자 : 김경미(고려대학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