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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에 있어서 마애불의 의미

한국의 마애불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각 시대의 불교 사상과 미술 양식을 반영하며, 한국 불교문화의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가치는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Gyeongju Historic Areas)에 포함된 경주 남산의 마애불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주 남산의 마애불은 신라 시대의 수도 경주에 위치하며, 신라 천년(기원전 57년~기원후 935년) 동안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대표적인 유산이다. 경주에는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왕경(王京) 유적과 불교 유적들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경주 남산은 신라 불교 미술의 보고(寶庫)로, 다양한 불보살의 형식과 조성 방법, 신라인의 사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그림 1). 경주 남산은 신라의 창건 신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신라인들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태어난 신성한 장소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이러한 장소의 신성성은 불교가 들어와 발전하면서 그대로 이어졌고, 그 결과 이곳에 다양한 불보살상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경주 남산의 마애불은 신라인들의 정신적 세계와 미의식을 불교문화 속에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림 1.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백제시대의 마애불 중에서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그림 2)은 또 다른 한국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 마애불들은 백제의 주요 무역로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를 통해 활발히 무역을 하던 백제 사람들이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당시 백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마애조각이 신앙적, 실용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교통로를 따라 조성된 마애불도 주목된다.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이나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는 남한강 수로를 따라 조성된 대표적인 사례로 교통로와 수로를 중심으로 한 신앙적 활동을 보여준다. 또한,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중기에 산악(山岳)법사가 새겼다는 기록이 『용주사본말사지』에 전해지고 있다. 이 불상이 조성 시기는 고려 시대 유가학(瑜伽學)을 대표하는 혜소국사(慧炤國師) 정현(鼎賢, 927~1054)이 안성 칠장사에 머물던 시기이다. 당시 이천 북악사, 원주 법천사, 중원 미륵사, 보은 법주사까지 이어지는 미륵신앙이 발전하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한편,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11세기에 번창했던 법천사, 칠장사, 덕주사와 가까운 교통로 근처에 조성되었음이 확인되며, 이러한 마애불을 당시 교통로와 신앙, 지역 불교 문화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림 2.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김경미
반면,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977년, 그림 3)은 ‘황제의 만세를 기원한다’라고 하는 왕실 축수 성격을 보여주는 조성 당시의 명문 기록이 마애불의 오른편에 새겨있어서 왕실 축수의 성격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마애불이 개인적 신앙을 넘어, 국가적이고 왕실 중심적 발원의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선시대 조성된 마애불 가운데는 명문이 함께 새겨져 있어 제작 시기와 발원자 등을 알 수 있는 사례가 많다. 특히, 서울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1630년)과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1663년)은 17세기 전란이 계속된 어려운 시대 배경 속에서 미래불인 미륵불을 조성한 사례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존상 제작으로 주목된다.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에 이르는 시기에도 마애불 제작은 이어졌다. 서울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좌상(1909년),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1928년)처럼, 불화를 그리던 화승이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애불을 회화처럼 장식적이고 세밀하게 표현한 사례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들은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 방법을 확인할 수 있으며, 마애불 제작 기법이 근대로 이행하면서 발생한 변화와 신앙적 성소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그림 3. 하남 교산동 마애여래좌상, 고려 977년 ©국가유산청
· 집필자 : 김경미(고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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