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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공간구성과 도상배치의 의미

건축적 특징과 상징성
경주 토함산 정상 가까이에 동향(東向)으로 자리잡은 석굴암은 일일이 가공한 화강암 석재를 정교하게 짜 맞추어 만든 석굴사원이다.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의 불교 석굴사원이 대부분 암반을 파고 들어가 조성한 자연석굴인 데 비해, 석굴암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지어진 조립식 인공석굴로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물이다. 석굴암은 주실(主室) 지붕을 돔, 즉 반원형의 궁륭식으로 축조하고 그 중앙에 연꽃 모양의 뚜껑돌을 얹은 점도 주목된다(그림 1). 일반적으로 다른 석굴사원들은 천정이 편평하거나 사다리꼴로 경사를 준 녹정형(盝頂形)이 많다. 궁륭형 천정은 까다로운 공법으로, 멀리 로마의 판테온(Pantheon)과 같은 서양 고대 신전이나 인도, 중앙아시아에 산재한 원형당(圓形堂) 사원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물들은 석굴암과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적인 영향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궁륭형 천정은 동서양 모두 공통적으로 천상의 세계를 나타내는 건축요소인 점에서 석굴암의 상징체계 이해에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그림 1. 석굴암 주실의 궁륭형 천정 ⓒ오세윤
석굴암은 불국사와 함께 김대성이 발원하여 토함산에 지어진 것이므로 이 둘을 연관지어 보아야 그 총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불국사는 평지에 자리 잡은 여러 건물의 집합체이고, 석굴암은 산 중턱에 축조된 하나의 건축물이다. 이를 불교적 관점으로 볼 경우, 불국사가 여러 불국토를 펼쳐놓은 드넓은 세계라면, 석굴암은 하나의 불국토를 응집시킨 단일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국사와 석굴암은 상반된 성격의 두 사찰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토함산을 하나의 이상적인 불세계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평면 구성과 존상 배치의 의미
석굴암의 전체 평면은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 주실 그리고 그 사이에 두 공간을 이어주는 좁은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그림 2). 내부에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판석에 부조로 새긴 입상이 총 29구, 주실 위쪽의 감실에 넣은 판석 부조 좌상이 현재 총 8구, 그리고 주실에 환조로 만든 본존불좌상 1구를 포함하여 총 38구의 상이 모셔져 있다.
그림 2. 석굴암 배치도 ⓒ『석굴암,그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2020) 편집
참배자는 안쪽으로 갈수록 격이 높은 상들을 만나면서 불세계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듯한 종교적 체험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존상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것은 다른 나라 석굴사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석굴암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서대로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그림 3).
그림 3. 석굴암 전실 전경 ⓒ오세윤
전실 양쪽에는 팔부중(八部衆)이 좌우에 4구씩 배치되어 있다. 그중 존명이 확실한 상은 향좌측 바깥쪽에 위치하여 8개의 팔을 지닌 아수라(阿修羅), 향좌측 세 번째의 머리에 사자가죽을 쓴 건달바(乾達婆) , 그 옆으로 머리에 용(龍)을 얹은 용, 그리고 맞은편 세 번째의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입에 염주를 문 야차(夜叉)이다. 팔부중은 세상의 다양한 중생을 상징하며 대승경전의 첫머리에서 부처님의 설법 장소에 모인 청중의 일부로 자주 등장한다. 팔부중 옆의 입구 양쪽에는 상체를 벗은 근육질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1구씩 있다. 둘 다 바깥쪽 팔을 위로 들어 올려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는데, 향좌측 상은 입을 벌렸고 향우측 상은 입을 다물었다. 금강역사는 경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라다니며 수호하는 역할로 등장하나, 석굴암에서는 중국 수·당대 석굴사원과 비슷하게 입구 양쪽에 수문장처럼 세워졌다. 금강역사를 지나 통로에 이르면 갑옷을 입고 발밑에 작은 인물들을 깔고 서 있는 사천왕이 좌우에 2구씩 자리잡고 있다. 그중 향우측 안쪽의 상은 손에 보탑(寶塔)을 들고 있고 나머지 3구는 검을 쥐었다. 보탑을 든 상은 존명이 다문천(多聞天)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보면 각각 북방 다문천-동방 지국천(持國天)-남방 증장천(增長天)-서방 광목천(廣目天)에 비정된다. 사천왕은 불교의 수직적인 수미산 세계관에서 수미산 정상 바로 아래의 사천왕천(四天王天)에 머물며 불법을 받들고 중생을 지켜주는 존재들이다. 석굴암에서는 사천왕상이 통로에 배치되어 수미산 세계의 사천왕천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입구 양쪽에 팔각기둥이 세워진 주실에 들어가면 위계가 더 높은 상들을 만나게 된다. 맨 바깥쪽에는 향좌측에 불자(拂子)와 정병을 든 범천(梵天)이, 그 맞은편에는 불자와 금강저를 든 제석천(帝釋天)이 배치되어 있다. 이 둘은 사천왕천보다 높은 하늘인 초선천(初禪天)과 도리천(忉利天)에 각각 거주하는 천신(天神)들이다. 범천 옆에는 경전을 든 보살이, 제석천 옆에는 잔을 든 보살이 있는데, 이들을 문수·보현으로 보기도 하나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다. 그 옆에는 삭발한 승형(僧形) 상들이 좌우 5구씩 총 10구가 있다. 청년, 중년, 노년의 다양한 연령대를 보이는 이들 중에는 코가 큰 이국적 외모의 상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발우, 정병, 손향로같은 지물을 든 예도 있다. 이 승형 상들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제자로 보기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한편, 10구의 승형 상들 사이의 주실 맨 안쪽, 즉 본존불상 뒤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 15구의 상들이 본존불 주위를 둥글게 둘러싼 구성방식은 교리적, 신앙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제기될 만큼 석굴암 도상 배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주실 위쪽에 마련된 10개의 감실 중 입구 양쪽 2개는 현재 비어있고 나머지 8개에 부조 좌상들이 있다. 본존불상을 보았을 때 뒷면의 두광 양쪽으로 유마거사(향좌측)와 문수보살이 서로 마주보며 대담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이밖에 지장, 관음보살 등의 존명도 확인된다.
그림 4. 석굴암 주실과 본존불좌상 ⓒ오세윤
마지막으로 원형 주실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본존불좌상은 완벽한 3차원의 환조상으로 석굴암 상들 중 크기도 가장 크다(그림 4). 오른발을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에 오른손을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자세를 한 이 상은 석굴암의 중심적인 존재로, 다른 부조상들의 의미도 궁극적으로는 이 상에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요성을 반영하듯 석굴암 본존불좌상의 존명과 근거가 되는 경전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제기된 바 있다.
석굴암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보살, 승려들을 비롯하여 범천·제석천,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중같은 여러 존상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하나의 자기완결적인 불국토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이 광경은 마치 대승경전에서 부처님이 설법할 때 참석하는 보살, 제자, 천부(天部)의 권속 등을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 규모가 아주 큰 것은 아니지만 기하학적 설계와 다양한 존상들의 짜임새 있는 구성을 통해 불교의 세계관과 심오한 사상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것은 다른 나라의 석굴사원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석굴암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 집필자 : 허형욱(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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