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율사가 봉암사에서 처음 개원한 율원으로 수행처를 옮겨 다닐 때마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다
한국불교에서 율원(律院)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이후부터이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었던 선풍진작과 불교정화를 위해 1967년 총림법이 제정되면서, 이를 계기로 율원이 성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 이전부터 계율 연구에 매진하였던 백용성의 전법제자 자운 성우(慈雲盛祐, 1911-1992)가 이미 봉암사 시절에 천화율원(千華律院)을 만들었다. 당시 자운율사는 지관, 일우, 석암, 일타 등과 함께 공부하면서 천화율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수행처를 옮길 때 마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봉암사 외에 해인사, 감로사, 통도사에서도 천화율원의 기록이 남아있다. ‘천화율원’이라는 명칭은 남산 율종(南山 律宗)의 일맥(一脈)인 삼매 적광(三昧寂光)율사가 보화산 융창사(寶華山 隆昌寺)에 설치한 천화율원을 자운율사가 흠모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총림법 제정 전의 철화율원은 연구전문기관으로서 인정 받지는 못하였다.
1947년 가을부터 1950년 2월까지 진행된 봉암사 결사는 영산도 구현 및 불조청규의 실천, 율장 정신의 실행 등을 기조로 펼쳐졌으며 전쟁 전부터 율장 연구에 매진하였던 자운율사는 천화율원을 만들고 1948년 8월『범망경』에 근거하여 보살계 수계의식을 진행하였다. 봉익동 대각사에서는 한문본 『범망경』, 『사미율의』, 『사미니율의』, 『범망경』, 『비구계본』, 『비구니계본』등의 출판을 준비하던 중 한국전쟁으로 모두 소실되었다. 1949년 자운율사가 통도사에서 천화율원을 개원하자 석암, 일타, 지관, 종수가 율학을 연찬하였다. 1951년 부산 감로사에서 천화율원을 개원한 후 소실된 율장을 다시 준비하여 간행 및 유포하였다. 1953년 통도사 감로당에 주석하면서 학승들에게 율장을 교육하고 비구계를 수계하였으며, 이후 해인사로 옮겨 천화율원을 개원한 후 후학을 지도하였다. 1956년 해인사 금강계단 개설 및 1957년에는 한글계본 율장을 편찬하였다. 천화율원의 이런 흐름을 주도한 것은 자운율사였다.
이후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1954년부터 본격화된 불교정화운동을 시작으로 1962년 4월 통합종단이 설립되었다. 1962년 8월 통합종단 제1회 임시 중앙종회에서 계단법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1967년 7월 제16회 중앙종회에 이르기까지 총림법 제정 및 총림 내 율장 교육, 율원 설립의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5개 총림 중 율원이 설립된 곳은 1977년 해인사, 1984년 통도사, 1988년 송광사 등이었으며, 천화율원을 개원한 자운율사는 해인사 및 통도사의 율원 설립 및 운영에 깊이 관여하였다.
현재 율장 간행의 주축이 되었던 부산 감로사 천화율원 감로계단에서는 보살계 산림법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1951년부터 자운율사를 전계대화상으로 많은 대덕들이 보살계 수계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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