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통도사 금강계단, 용연사 금강계단, 범어사 금강계단, 화엄사 금강계단, 동화사 금강계단, 월정사 금강계단 등이 있어 출가자의 구족계와 출・재가자의 보살계 수계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
양산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금강계단(金剛戒壇)(대웅전과 더불어 국보 지정)은 신라 자장(慈藏, 590-658) 율사가 건립한 것으로 우리나라 계단의 시초로 여겨진다. 자장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 금강계단에 모시고 계단을 세웠다고 한다. 계단의 앞쪽에는 통도사 대웅전이 있는데 일반적인 대웅전과 달리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계단에 봉안한 부처님 진신사리가 곧 석가모니부처님이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예경의 대상으로 삼는 전각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한다.
통도사 금강계단의 형태에 대해 『삼국유사』권3 「탑상(塔像)」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조에서는 2층으로 되어 있고 상층의 가운데는 돌로 된 덮개를 안치한 형태가 마치 가마솥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통도사와 금강계단은 이후 수차례 중수(重修)되었기 때문에 현존 형태가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계단 주변에 둘러져 있는 석조 담장은 근세에 중수된 것이다.
대구 달성군 비슬산 용연사(龍淵寺) 금강계단(보물 지정)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계단이다. 이곳에 모셔진 사리는 본래 통도사에 봉안되어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라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 4과가 왜군에 의해 약탈당하였는데,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이 왜군을 회유하여 모두 환수하였다. 유정은 스승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지시로 사리를 나누어 그 중 2과를 치악산 각림사(覺林寺)에 남겨두었다. 이후 유정의 제자 청진(淸振)이 각림사에 봉안된 사리를 용연사로 옮겼고, 용연사 대중이 함께 논의하여 사리 2과 중 하나를 통도사로 환지본처하고 남은 1과를 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사리가 봉안된 용연사 금강계단은 석종형 ‘탑’의 형태로 1673년에 건립되었다. 이곳도 통도사와 마찬가지로 계단에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므로 그 앞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적멸보궁이 세워져 있다.
통도사 금강계단과 용연사 금강계단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석조를 쌓아 만든 계단이라는 점, 계단 앞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적멸보궁이 위치해있으며 진신사리가 불상을 대신하여 예경의 대상이 된다는 특징이 공통된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梵魚寺) 금강계단은 보살계 수계산림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계단이다. 범어사의 보살계 수계산림은 오랜 역사를 거듭해오다 1901년 성월 일전(惺月一全, 1866-1943)이 범어사에 금강계단을 설립하고 제1회 보살계 수계산림을 명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범어사 해탈문을 지나면 법회용 건물로 사용되는 보제루(普濟樓)가 있는데, 전각의 정면에는 ‘普濟樓’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후면에 ‘金剛戒壇’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곳은 현재에도 보살계 수계산림이 봉행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에는 일찍이 고려시대에 영통사(靈通寺), 숭법사(崇法寺), 보원사(普願寺) 등과 함께 국가로부터 관단사원으로 지정되면서 계단이 설치되었고, 출가자들이 이 사찰들에서 경전과 율을 시험보도록 하였다고 한다(『고려사』권6). 이것은 정종(靖宗) 2년(1036)의 기사로 이 때, 또는 그 이전에 동화사에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동화사에 마련되어 있는 금강계단의 경우, 1992년 완성한 높이 33m 통일약사여래불상의 맞은편에 통일기원대전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전각의 오른편에 ‘金剛戒壇’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전각에서 보살계 수계산림을 봉행하고 있다.
범어사 금강계단과 동화사 금강계단은 통도사나 용연사와 달리 석조구조물의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 보통 계단은 흙이나 돌로 쌓은 구조물을 일컫는데, 범어사와 동화사는 전각을 계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계단의 형태와는 큰 차이점이다.
이상의 계단들은 수계하는 장소로서 특정한 장소에 석조구조물이나 전각이 마련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비해 구체적인 형태의 구조물로서의 계단은 없지만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단을 마련하여 수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늘날 평창 오대산 월정사(月精寺)나 구례 지리산 화엄사(華嚴寺)에서도 금강계단을 마련하여 보살계 수계산림을 봉행하고 있다. 이 사찰들의 경우 수계를 위한 따로 독립된 형태의 석조구조물이나 전각이 존재하지 않고, 사찰의 주불전과 그 앞마당에 임시로 계단을 마련하여 보살계 수계를 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본래 ‘계단’은 흙이나 돌로 쌓은 구조물을 의미하므로 수계를 위해 별도의 구조물을 마련하지 않는 이 사찰들의 금강계단은 계단보다는 수계용 장소인 계장(戒場)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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