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계단은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의 금강계단이 그 시초이다.
우리나라에서 계단(戒壇)은 신라 자장(慈藏, 590-658) 율사가 건립한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시초로 여긴다. 7년간의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643년 신라로 귀국한 자장은 대국통(大國統)에 임명되었다. 당시 신라 조정에서는 자장의 귀국을 계기로 불교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였다. 『삼국유사』권4 자장정율(慈藏定律)조에 따르면,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지 오래되었으나 승려가 수행하고 받드는 규범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이에 자장을 대국통으로 삼아 승려들의 규범을 주관하도록 하였다. 자장은 승려들로 하여금 반월마다 포살[설계(說戒)]을 행하고 겨울과 봄에는 시험을 봐서 지계와 범계를 알도록 하였으며, 관원을 두어 이를 유지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자장의 노력으로 신라에는 불교가 성행해지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기를 청하는 자들이 세월이 갈수록 늘어나니, 이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계단을 쌓아 사방에서 오는 자들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자장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부처님 진신사리를 갖고서 귀국하였는데, 그 사리를 셋으로 나누어 각각 황룡사(皇龍寺) 탑, 태화사(太和寺) 탑, 그리고 통도사 계단에 안치하였다고 전한다. 646년 건립된 통도사와 금강계단은 자장의 불교계 개편의 노력으로 점차 출가하는 사람들이 늘자 승단의 수계의식을 확립할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계단의 형태에 대해 『삼국유사』권3 「탑상(塔像)」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조에서는 계단이 2층으로 되어 있고 상층의 가운데는 돌로 된 덮개를 안치한 형태가 마치 가마솥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통도사와 금강계단은 이후 수차례 중수(重修)되었기 때문에 현존 형태가 자장이 건립한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한편 이 2단 구조의 계단은 당나라 도선(道宣, 596-667)의 계단과 중층구조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이는데, 문제는 자장의 계단 창설 시기는 646년으로 도선이 정업사(淨業寺)에 계단을 마련한 667년보다 21년이나 앞선다는 점이다. 자장은 당 유학 시절 도선과 밀접하게 교류하였으므로 계단의 형태에 대해서도 도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인데, 이러한 점 때문에 통도사 금강계단의 창립자나 창립시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도선의 계단은 3단 형태에 부도를 올리고 사리를 봉안한 5중 구조임에 비해, 통도사의 계단은 2단 형태에 상층에 사리를 봉안하고 돌로 된 덮개를 안치하는 3중 구조라는 특징을 보인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마 자장은 당나라에 머물던 시절 도선 외에도 중국 국내외의 많은 승려들과 교류하였을 것이고 그들로부터 계단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였을 것이고,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귀국 후 계단을 건립하였을 것이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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