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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계단과 도선의 관중창립계단

중국의 계단은 유송(劉宋) 시대 남림사(南林寺)의 계단이 효시이며, 당나라 도선이 『관중창립계단도경』을 저술한 후 구체적인 형태의 계단이 중국전역에 보급되었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계단이 설치되었고, 또 그 형식이 어떠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유송(劉宋, 420-479) 시대 구나발마(求那跋摩, 367-431)와 관련하여 남림사(南林寺)의 계단을 시초로 본다. 『출삼장기집』권14나 『고승전』권3에 보이는 구나발마전에 따르면, 그가 입적하였을 때 이 남림사 계단 앞에서 외국법에 의해 다비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도선(道宣, 596-667)의 『관중창립계단도경(關中創立戒壇圖經)』(이하 『계단도경』)과 『불조통기』권36에는 구나발마가 남림사 계단을 세웠고 이것을 중국 계단의 효시라고 전하고 있으며, 『비구니전』에서는 이 남림사 계단에서 구나발마의 제자였던 승가발마(僧伽跋摩)를 계사로 하여 비구니 300여 명이 차례대로 다시 수계[중수(重受)]하였다고 한다. 한편 『대송승사략(大宋僧史略)』권1에는 남제(南齊) 영명연간(永明年間, 483-493)에 삼오(三吳)지방[오흥(吳興), 오군(吳郡), 회계(會稽)]에 처음으로 계단이 건립되었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다. 또한 도선은 『계단도경』에서 남림사 계단 이전부터 세워진 여러 사찰들의 계단들을 열거하며 300여 개의 계단이 세워져 있었음을 서술하고, 강남에 불교가 전래되고서 오랫동안 유지된 것은 바로 계단의 존재 덕분이라고 한다. 이 300여 개의 계단이 실제로 존재하였는가는 다소 의문이며, 일반적으로 구나발마가 세운 남림사 계단을 중국 계단의 효시로 삼고 있다. 중국에서 계단 위에서의 수계가 제도화된 것은 도선이 『계단도경』을 저술한 이후로 보인다. 667년 장안의 정업사(淨業寺)에 계단을 건립한 도선은 『계단도경』에서 계단의 기원과 명칭, 형태 등을 11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설명하는 계단의 형태를 보면, 계단은 땅에서부터 세워 3중의 모양으로 세우고, 1단은 높이 1주(肘)[≒90cm], 2단은 높이 1주 반(半)[≒135cm](원문은 2주 반으로 되어 있지만 오류로 보임), 3단은 높이 2촌(寸)[≒12cm]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부처님 사리가 모셔져 있어 부도까지 더하여 총 5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구체화된 계단 작법은 후대 찬녕(贊寧, 919-1001)의 시대에도 세간에서 행해지고 있었다는 『대송승사략』의 기록처럼 표준화된 계단의 형태로 중국에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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