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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군과 계율

출가자의 승군 활동은 한국불교가 처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서 행한 부득이한 활동으로, 계율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불교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호국불교가 말해지는데, 동아시아에서 불교는 세속 정치권력의 힘 앞에서 자율권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호국(護國)과 호법(護法)을 일체화시키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승군 활동은 그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현상이었다. 불살생(不殺生)을 핵심 규범으로 삼는 불교에서 출가자가 살인이 불가피한 승군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많은 외세의 침입으로 국가의 존속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계율의 수지를 고집하며 국가적 요청에 불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한국의 승려들은 불가피하게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선조는 그해 7월 서산대사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 임명하였고, 휴정은 전국 사찰에 격문을 띄어 5,000여 명의 의승군을 소집하였다고 한다. 의승군이 된 휴정과 그의 문도들은 평양성, 행주산성 등의 주요 전투에 참여하여 곳곳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산성 축조와 군량 조달 등도 주도하였다. 특히 휴정의 수제자로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은 휴정을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의승군을 통솔하며 직접 전투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과의 강화 교섭, 전후에 조선을 대표해 일본으로 파견되어 국교 재개 문제나 포로 생환 등 외교사안의 처리를 주도하였다. 이러한 승군 활동은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하며 조선 후기 불교 존립의 바탕이 된다. 조선 초부터 유학자들은 승려에 대해 부모를 버리고 나라를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충효의 윤리를 저버린 자들로 비판해왔는데, 위태로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함에 커다란 공을 세운 승군 활동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불교계 또한 승려들의 사망과 부상, 사찰 및 재산의 손실 등 감당하기 어려운 인적・물적 손상을 입게 된다. 이와 함께 수행기풍이 퇴조되고 상당수의 승려가 환속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하였다. 휴정의 제자인 정관 일선(靜觀一禪, 1533-1608)은 “출가의 뜻을 잊고 계율 실천을 폐할 뿐만 아니라 허명을 바라고 돌아오지 않으니 장차 선(禪)의 기풍이 멈추게 될까 우려된다.”고 승군 활동의 현실적 폐해를 개탄하였다.
무엇보다 승려들의 전쟁 참여는 계율과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삼국시대 불교 전래 초부터 국가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한국불교는 신라 원광(圓光, 550-630 또는 640)의 세속오계(世俗五戒)에서 보듯이 전쟁과 국가의 위기 앞에서 국가적 요청에 부응하여 계율을 재해석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범망경』 보살계에 관한 신라 승려들의 주석에서 잘 드러난다. 원효(元曉, 617-686)는 『범망경보살계본사기(梵網經菩薩戒本私記)』,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에서 범계의 판단 기준으로 행동보다 마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달기보살(達氣菩薩)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범계를 판단함에 있어 마음의 문제를 중시하는데, 달기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통달한 보살로 중생구제를 위해서라면 파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달기보살은 중생의 근기를 살펴 죽이지 않으면 제도할 수 없는 근기인 경우 죽이더라도 복이 된다고 한다. 즉 중생을 위한 이타행으로서의 범계는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이라고 보는 것이다. 원효의 이러한 해석은 이후 『범망경』 주석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태현(太賢)의 경우 기본적으로 원효와 달리 살생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살생하는 무기를 소지하지 말라는 『범망경』 제10경계(經戒)에 대해 정법을 호지하기 위해서는 무기를 소지해도 범계가 아니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또 나라의 사신이 되어 군대가 서로 싸우게 하거나 왕래해서는 안 된다는 제11경계에 대해서 화친을 위해서라면 군에 왕래하는 것은 범계가 아니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계율 해석은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견해이며, 성문율과 달리 대승보살계는 범계의 판단 기준으로 마음과 의지를 중시하므로 융통성 있는 적용이 가능하다. 잦은 외세 침입이라는 한국불교가 처해있던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러한 계율 해석은 조선불교에 이르기까지 승려들의 전쟁 참여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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