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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단수계

계단(戒壇)은 수계작법(受戒作法)에 따라 구족계갈마를 행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초기에는 특별한 계단과 작법없이도 수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계를 받고자 하는 이가 많아지고 승단이 생기며 수계의식이 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분율』수계건도에 따르면 초기불교의 계단이나 도량은 승갈마법(僧羯磨法)에 의해 계장(戒場)을 결계하였다.
만약 4인이나 5인.10인.20인의 승가에서 갈마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 가운데 함께 생활하는 대중이 번번이 모이느라 피곤하게 되었기에 부처님께서는 계장(戒場)을 결계(結界)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이는 사방의 작은 경계의 모양(小界相)을 말하니 말뚝이나 돌이나 경게가 되는 밭두둑 등으로 한계를 짓는다. 이 가운데에서 결계하는 것은 세겹의 표시를 하는데, 가장 안에 있는 한 겹이 계장의 모양(戒壇相)이며 중간의 한 겹이 큰 경계의 모양이다. 이것은 계장의 모양과 서로 겹쳐서도 안되며, 하나로 합쳐져서도 안 되니 마땅히 중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 가장 바깥의 한 겹이 큰 경계의 바깥모양(大界外相)이다. 먼저 큰 소리로 계장의 모양을 말하고서 결계를 한다.
이렇듯 초기불교는 결계를 통해 계장(戒場)을 마련하여 수계하였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계단을 축조하여 수계의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의하면 인도 나란타사(那爛陀寺)에 계단이 있고 중앙에 작은 탑(小塔)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계단 중앙에 소탑(小塔)이 있는 형식은 우리나라 계단의 석종부도(石鐘浮屠)와도 비슷한 형식이다. 인도의 계단이 중국으로 전파되고 우리나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자장율사가 출가자에 대한 수계의식을 행하기 위해 계단을 통도사에 세우고 『사분율』을 중심으로 계율을 정비한 이래 구족계는 출가한 사원이 아닌 계단이 있는 사찰에서 받게 되었다. 이러한 예는 행적(行寂, 832~816)은 해인사에서 출가했지만 855년(文聖 17) 23세 때에 복천사 관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고 하며, 개청(開淸, 854~930)은 화엄산사에서 출가해 화엄을 공부하다가 877년(憲康 3)에 엄천사(嚴川寺) 관단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다시 본사로 돌아가 경전 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한 형미(逈微, 864~917)는 보림사(寶林寺)에서 출가했으나 화엄사에서 수계하였고, 찬유(璨幽, 869~958)는 삼랑사(三郞寺)에서 출가하였으나 장의사(莊義寺)에서 수계하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출가한 사원과 다른 특정 사원에서 수계한 사례는 상당히 많다. 이들 사례를 통해 계단은 특정 사원에서 관단 계단으로 설치하여 운영하며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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