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규(淸規)는 선종 사찰에서 지켜야 할 일상적인 생활 규범 혹은 규범집으로 중국불교사 최초의 청규는 백장회해에 의해 제정된 백장청규이다. 다만 이 청규는 현존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청규는 북송 대 자각 종색이 제정한 『선원청규』로, 종색은 백장청규의 본래 뜻과 모습을 되살릴 목적으로 새롭게 청규를 제정하였다.
청규(淸規)는 선종 사찰에서 지켜야 할 일상적인 생활 규범 또는 규범집이다. 중국에서는 5세기 초 『십송률』, 『사분율』, 『마하승기율』, 『오분율』의 4대 광률이 한역되었고, 비슷한 시기 『보살지지경』 등의 보살계 경전도 전래되었다. 또한, 5세기 중후반에 『범망경』과 같은 중국 찬술 보살계 경전도 완비되면서 중국불교계는 불교교단 운영에 필요한 규범집들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 규범집, 특히 승가의 운영 규범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은 문헌인 율장은 인도의 환경과 문화 속에서 성립하였기 때문에 중국불교도가 그대로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았다.
이러한 사정은 중국에서 성립한 선종도 마찬가지였으며, 선종의 독자적인 사찰 건립과 수행규범이 요구되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6의 「선문규식(禪門規式)」에 따르면, 이전까지 선종 승려들은 율사(律寺) 안의 별원(別院)에 머무르며 지냈다고 한다. 비구가 되려면 율장의 규정에 따라 구족계를 받고 250계를 수지해야 한다. 이 규정에 따라 생활하는 사원이 율사이다. 그 때문에 열반종, 성실종, 천태종, 화엄종 등은 수행하는 교리의 내용은 다르지만, 250계를 수지하고 수행하는 점에서는 동일하게 ‘율사’라고 불린다. 선종의 초조(初祖)인 보리달마부터 혜능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선승들은 이렇게 율사에서 생활하였다.
그런데 보리달마의 중국 도래부터 청규 제정의 시기까지 300년 가까이 지나면서 선종은 중국에 널리 퍼지며 선종만의 제자 교육 방식과 수행법 등도 성립하고 있었다. 따라서 율사 안에서 따로 생활하였지만, 그럼에도 그 생활 방식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이에 마침내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는 ‘백장청규(百丈淸規)’ 혹은 ‘고청규(古淸規)’라고 불리는 중국 불교사 최초의 청규를 제정하며 율사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이때 백장은 “대·소승에 국한되지 않으면서도 대·소승과 다르지도 않다. [대·소승 양쪽을] 박약절중(博約折中)하여 제도와 규범을 제정하여” 청규를 제정하였다고 한다. 즉, 성문율과 보살계를 절충하여 청규를 제정한 것이다. 백장청규는 현존하지 않지만, 이 청규의 출현에 의해 선종은 교리뿐만 아니라 교단으로서도 독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청규는 북송(北宋) 숭녕(崇寧) 2년(1103), 자각 종색(自覺宗賾)이 지은 『선원청규(禪苑淸規)』이다. 종색은 원부(元符) 2년(1099)부터 숭녕 2년까지 약 5년에 걸쳐 당시 각지의 선종총림을 두루 방문하며 자료를 수집하여 『선원청규』를 편찬하였다. 『선원청규』 서문에 의하면, 종색은 당시 백장이 제정한 규범들이 많이 변형된 점을 안타까워하며 그 본래의 뜻과 모습을 되살리고자 청규를 편찬하였다고 한다. 『선원청규』는 그 후 중국 및 한국, 일본의 선종사찰에서 찬술된 여러 청규의 연원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 집필자 : 김보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