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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하 승림(萬下勝林)

19세기 후반 중국 청나라 창도한파부터 대소승계를 받고 조선불교에 계맥을 전수한 율사 승려이다
한국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계율에 의거한 수계의식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는 6세기 후반 일본에 수계작법을 전해 주었고, 신라는 7세기 초 지명(智明)이 『사분율갈마기(四分律羯磨記)』를 저술한 데 이어 자장(慈藏, 590-658)이 수계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국가로부터의 공식 지원이 현저히 떨어진 조선 후기에 들어 계맥은 실전(失傳)의 위기에 처하였다. 계율수계의 전통은 19세기 초 월출산 도갑사의 대은 낭오(大隱朗旿, 1780-1841)에 의해 부흥되었다. 율종(律宗) 중흥을 발원했던 대은 낭오는 순조 26년(1826) 스승인 금담(錦潭) 화상과 함께 ‘범망경 심지계품’과 ‘보살영락본업경’의 가르침에 따라 자서수계(自誓受戒)를 발원하고, 지리산 칠불선원에서 7일간의 용맹정진 기도 끝에 이마에 서광(瑞光)이 내리는 이적을 경험하였다. 금담은 이것이 율전의 서상수계(瑞祥受戒)임을 확신하고, ‘나는 오직 법을 위함이요, 사자(師資)의 서열에는 구애받지 않는다’라고 하며 상좌인 대은에게 제자의 예를 갖추고 수계를 받아 조선불교의 계맥을 부활하였다. 대은의 계맥은 금담 이후 해남 대흥사의 초의(草衣), 범해(梵海), 선곡(禪谷), 용성(龍城), 동헌(東軒), 도문(道文)에게 계맥이 전승되었다. 또 해인사의 호암문성(虎岩文性)이 1893년 대흥사의 범해로부터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고, 1908년 해인사 상선원(上禪院)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계맥을 전수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서 오직 이적의 체험으로 계맥을 부흥한 대은의 서상수계에 대해 논란이 일자, 1892년에 만하 승림(萬下勝林)은 중국 청나라로 건너가 법원사(法源寺) 황성계단(皇城戒壇)의 전계대화상인 창도 한파(昌濤漢波) 율사로부터 대소승계를 받고 계맥을 전수하였다. 귀국한 만하 승림은 1897년 양산 통도사에 계단을 설치하고 수계법회를 실시하여 이때 해담 치익(海曇致益, 1862-1942)이 수계하였다. 이후 1935년 회당 성환(晦堂性煥), 1944년 월하 희중(月下喜重, 1915-2003), 1979년 청하 성원(淸霞性源) 등이 통도사 계단에서 수계하였다. 한편 1898년 범어사에서 만하 승림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은 성월 일전(惺月一全, 1866-1943)은 1904년 범어사에서 제1회 수계법회를 열고, 금강계단을 창설하여 사미계, 사미니계, 비구계, 비구니계, 보살계 등을 승려 및 재가자에게 전수하였다. 이때 일봉 경념(一鳳敬念, 1863-1936)이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으며, 일봉의 계법은 이후 운봉 성수(雲峰性粹, 1889-1946)→영명(永明)→동산 혜일(東山慧日, 1890-1965)→고암 상언(古庵祥彦, 1899-1988)→석암 혜수(昔岩慧秀, 1911-1987)→자운 성우(慈雲盛祐, 1911-1992) 등으로 이어져 오게 된다. 이처럼 청나라에서 전계해 온 만하 승림의 계맥은 서상수계에서 비롯된 대은 낭오의 계맥과 함께 근현대 한국불교 계맥의 양대 봉우리가 되었다. 다만 만하승림이 청나라에서 받아온 창도한파의 율맥은 고심 여향(古心如響, 1541-1615)으로부터 전승된 것으로, 고심 여향 또한 오대산 참배 기도 중 문수보살로부터 감응을 얻은 뒤 전계(傳戒)의 법회를 중흥시켰다고 하므로, 만하가 받아온 율맥 역시 근원은 서상수계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 집필자 : 민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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