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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은계(大隱系)

대은 낭오 율사가 수계한 계맥이다
고려 중기 이후 불교 내부의 부정적인 상황과 조선조에 들어서 시작된 숭유억불정책(崇儒抑佛政策)으로 불교는 탄압받기 시작하였다. 출가 승려를 칠천중(七賤中)에 포함시켜 멸시하는 상황에서도 조선조의 승려들은 불교 중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계맥과 정법을 잇기 위해 노력하던 월출산 도갑사의 대은 낭오(大隱朗旿, 1780-1841)율사는 스승인 금담(金潭) 화상과 함께 1824(순조24)년에 하동 칠불암에서 불교 중흥을 발원하고 칠일간의 기도 끝에 서상수계(瑞祥受戒)를 받았다. 이후 대구 용연사에서 만하 승림(萬下勝林) 율사가 중국으로 건너가 1892년(광서 18) 황성(皇城)의 법원사궁단(法源寺宮壇)에서 창도 한파(昌濤漢波)율사로부터 수계하고 귀국하여 1897년(광무1) 양산 통도사에서 수계법회를 열었다. 이로써 대은 계맥과 만하 계맥이 병존하게 된다. 이 중 대은파는 해인사・송광사 · 망월사 · 화엄사 · 묵담 성우(默潭聲祐) 율사 · 동산 혜일(東山慧日) 율사 등의 계단에서 이어져 왔다.
1. 해인사금강계단호계첩문(海印寺金剛戒壇護戒牒文)에 의하면 자장율사의 맥을 이어, 1376년(홍무 9) 인도의 지공 화상이 통도사에서 수계할 때 해인사 주지였던 원무 대사가 수계법회에 참가하여 계를 받은 후 해인사 금강계단의 단주가 되어 전계하였다. 1902년에는 상선원에 금강계단을 개설하고 호은 문성(虎隱文性) 율사가 전계사(傳戒師)로 추대되어 제산 정원(霽山淨願)에게 수계하였으며, 제산은 용성 진종(龍城震鍾)에게 계를 주었다. 용성은 동산 혜일(東山慧日)과 경하 재영(景霞載英)에게 계를 전하였으며 경하는 다시 도원 진제(道圓眞諦)에게 계를 주었다. 한편, 범어사호계첩(梵魚寺護戒牒)에서는 만하 계보를 만하 승림(萬下勝林) → 성월 일전(惺月一全) → 일봉 경념(一鳳敬念) → 운봉 성수(雲峰性粹) → 영명(永明) → 동산 혜일로 기록한다. 2. 송광사호계첩문(松廣寺護戒牒文)에는 금풍(金灃)→초의(草衣)→범해(梵海)로 계승되어 대은계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3. 『불교잡지(佛敎雜誌)』 제56호에서는 대흥사의 계맥으로 대은(大隱) → 금담(金潭) → 초의(草衣) → 범해(梵海) → 제산(霽山) → 호은(虎隱) → 금해(錦海)를 전한다. 그리고 제산은 다시 대연(大蓮)과 보담(寶潭), 구성(龜城), 응해應海, 남천 외 사십여 명에게 수계하였고, 호은은 다시 정용(定龍), 관성(冠城), 진응 외 수십 명에게 수계하였으며, 금해는 다시 만암(曼庵), 묵담(默潭)에게 수계하였다고 한다. 4. 망월사 용성 율사 호계첩문(望月寺 龍城律師 護戒牒文)에는 대은 율사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5. 화엄사 호계첩문(華嚴寺 護戒牒文)에는 해동 대은 율사 계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6. 담양 용화사 묵담 성 우율사 호계첩(潭陽 龍華寺 默潭聲祐律師 護戒牒)에 대은 낭오 → 금담 보명 → 초의 의순 → 범해 각안 → 제산 정원 → 호은 문성 → 금해 관영 → 만암 종헌(曼庵宗憲)→묵담 성우(默潭聲祐) → 혜은 법홍(慧隱法弘) → 도원 수진(道圓守眞)이라고 적혀 있어 대은계임을 알 수 있다. 7. 동산 혜일 율사의 계보에서는 두 가지 계맥을 전한다하고 있다. 첫째는 범어사 금강계단 호계첩문에 따라 만하 승림 → 성월 일전 → 일봉 경념 → 운봉 성수 → 영명 율사 → 동산 혜일로 기록하는데 이것은 만하의 계보이다. 두 번째로 용성 율사가 동산 율사에게 전계한 전계증(『동산대종사문집』p.413)에서는 대은 → 금담 → 초의 → 범해 → 선곡 → 용성 → 동산으로 계승되고 있어 대은의 계보임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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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첩(1920년대 해인사, 망월사 등)『백용성대종사총서』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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