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은 용성에게 인가받은 선사이며, 한국불교 계맥의 초석을 다진 중흥조이다.
자운 성우(慈雲盛祐, 1911-1992)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율사이며, 율원을 만든 승려이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으며, 오대산에서 탁발을 나온 혜운(慧雲)을 만나 1927년에 합천 해인사에서 혜운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938년 도봉산 만월암에서 용성(龍城)에게 인가받아 의발을 전수받았는데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깊은 뜻’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지어 올렸다고 한다.
청산은 항상 걷는데
백운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네
사람이 물속을 걸어가는데
물이 옷에 붙지 않도다
靑山常運步 白雲永不動 人踏水底過 水不着衣裳
1939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백일 간 정진 중, 문수보살이 계율을 진작하라는 뜻을 전하였다고 한다. 경북 문경 회양산 봉암사(鳳巖寺)에 특별백찰 수도도량을 건립하여 1947년 봉암사 결사 당시 성철 등과 함께 108배, 능엄주 독송 및 조석 예불 등의 불교 의례를 정립하고, 조계종의 법복인 보조장삼(普照長衫)과 율장에 의한 괴색가사(壞色袈娑) 착용, 철발우(鐵鉢盂) 사용, 육환장(六環杖) 소지, 오후 불식(不食) 등을 실천하였다. 이후 계율사상을 진작시키기 위해 『자비도량참법』을 간행하고, 『범망경』을 번역하여 전국의 사찰에 배포하였다. 1955년 합천 해인사 주지 및 1956년 재단법인 해인학원 이사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 해인사 금강계단의 전계화상에 추대되었다. 1957년 조계종 중앙감찰원장을 역임하였고, 1960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1962년 제1회 통합종단 임시 중앙종회에서 계단법(戒壇法)이 제정되면서 제1회 단일계단 사미·사미니 수계산림의 전계대화상으로 취임하였다. 제2회 단일계단 전계대화상은 고암 상언(古庵祥彦, 1899∼1988)이 취임하였으나 3회에서 13회에 이르는 11년 동안의 전계대화상에 자운이 임명되면서 1962년 창종된 대한불교 조계종의 수계와 계단 및 계율에 있어서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1967년 부산 동래 범어사(梵魚寺) 주지, 1975년 조계종 규정원장, 1976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조계종 원로에 추대되었으며, 1977년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1979년 동국역경원장,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조계종 단일계단(單一戒壇)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을 역임하였다.
자운은 한국불교 계맥(戒脈)의 중흥조로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자운에게 계를 받지 않은 승려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불자들에게 계첩을 수여하였다. 평생 오후불식을 실천하면서 후학들에게 계율정신을 바탕으로 자비를 실천할 것을 당부하였으며 입적 전에 “내가 참된 율사라면 일생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였으니 율사(律師)라는 호칭을 받기에 부끄럽다”는 말씀을 남기신 자운은 말년에 아미타불 명호를 10만번씩 칭명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한다. 1992년 해인사에서 임종게를 자필로 남기고 입적하였으며. 『보살현감(菩薩玄鑒)』, 『제경정화(諸經精華)』, 『정토법요(淨土法要)』, 『연종보감(蓮宗寶鑑)』, 『수계의식(受戒儀式)』등의 저서를 찬술하였으며, 해인사 일주문 동쪽에 행적비와 사리탑이 남아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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