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는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화두를 참구한 선사이며, 자운의 율맥을 이어받아 율장 연구 및 수계의식 정립에 힘썼다.
동곡 일타(東谷日陀, 1928-1999)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으며 속명은 김사의(金思義)이다. 법명은 일타이며, 법호는 동곡, 삼여자(三餘子), 퇴설(堆雪) 등이다. 1942년에 양산 통도사에서 고경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1949년 범어사에서 동산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하였다. 응석사, 범어사, 성주사 선원에서 금오, 동찬, 성철 등과 함께 안거를 지냈다. 1953년 자운율사 회상에서 율장을 연구하였으며 중수계법을 정립하였다. 1955년에 선학원에서 동안거를 지내고 태백산 도솔암으로 가 동구불출(洞口不出), 오후불식(午後不食), 장좌불와(長坐不臥)로 6년 결사에 들어갔으며, 1956년 아침 행선 중 깨달음을 얻어 읊었다는 오도송이 다음과 같다.
몰록 하룻밤을 잊고 지냈으니
시간과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치는구나
頓忘一夜過 時空何所有 開門花笑來 光明滿天地
1962년 조계종 정화대책 중앙비상종회 율장부문 의원이 되어 대덕 법계를 품수하였다. 1963년 조계종 초대 중앙종회의원에 피선됐으며 교육위원, 법규위원, 감찰위원, 역경위원, 우리말 팔만대장경 편찬위원에 추대되었다. 1972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10명의 태국 스님으로부터 전통구족계를 중수(重受)하였고, 1976년 해인총림 율주로 『사분율의』, 『불교와 계율』 등을 번역 및 찬술하여 출판하였다. 1993년 구족계 단일계단 전계대화상으로 추대되었으며, 1999년 미국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범망경보살계』, 『불교와 계율』, 『사분율의』, 『시작도 없는 길』,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집착을 버리면 행복이 보인다』 등 약 20여 종의 저서를 남겼으며 다수의 음성법문과 ‘해인삼매’, ‘보살계법문‘, ’교수불자수련법문’ 등의 영상기록물이 남아있다.
일타는 선사이면서 율사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화두를 참구하였으며, 자운의 율맥을 이어받아 율장 연구 및 수계의식 정립에 힘썼다. 일타는 입적 전까지 ‘계’를 우선시하되 참선으로써 수행을 완성해야 하고 이로 인한 지혜를 통해 자비를 실천하기를 강조하였다. 「동곡 일타 대율사의 수행체계 연구」에서는 일타의 계율을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대방편으로서의 ‘계’이고 다른 하나는 불지(佛智)에 기반한 각자(覺者)의 ‘계’이다. 전자는 선지식으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 행위하는 것으로 제악막작(諸惡莫作)·중선봉행(衆善奉行)하기 위함이다. 후자의 경우 수행을 통해 불지가 밝은 자는 그에 기반하여 행하기 때문에 그 행위에 ‘계’의 어긋남이 없다는 것이다. 계를 지키고 파할 것 없이 계를 지키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타는 본인의 저서에서 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였다.
계의 원어는 시라(尸羅)로서 바라밀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그 바라밀을 영구히 지속하는 방편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계는 성불(바라밀)하는 과정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불한 후에도 늘 계율이 필요한 것이다. 선정이나 성불의 경지에서는 계를 지킬 것도 없고 파할 것도 없는 무작계(無作戒)와 무루계(無漏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계율을 아니 지켜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을 새로 계를 지키고 가할 것도 없이 으레 지켜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은 일타가 일생을 걸쳐 계율을 강조한 것에 대해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한국 불교의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계율 체계의 허술한 점을 단속하고, 승속 문화를 재정비하려는 노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계행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불법에 따라 수행하지 않는 것이라며 불자로서의 정체성이 계에 있음을 강조한 일타는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선사이자 율사이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