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은 용성에게 법을 이어받은 선사이며, 철저한 지계정신으로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한 율사이다.
동산 혜일(東山慧日, 1890-1966년)은 한국의 승려이다. 속성은 진양 하(河)씨이고, 법명은 혜일이며 동산은 법호이다.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서울에 있던 경성의전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 고모부였던 오세창의 권유로 백용성을 만나게 되어 출가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때에 백용성의 “육신의 병을 고치는 사람이 의사인데 중생의 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배가 아프고 종기가 나고 상처가 나는 것은 육신의 병이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마음의 병이니, 육신의 병만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라는 법문이 발심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용성을 은사로 출가하여 석왕사, 해인사, 범어사 등에 주석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설법 제일 하동산’이라 칭해지면서 법회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전해진다. 불교 정화 운동을 펼쳤으며 1965년 4월 24일 범어사에서 입적하였다.
동산은 용성에게 법을 이어받은 선사이며, 철저하게 계를 지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지계 정신은 그로 하여금 불교 정화 운동의 선봉에 서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불교 정화 운동은 불교 정화 불사라고도 불린다. 1954년부터 1962년까지 대처승을 배제한 비구승들이 무너진 불교의 정신을 바로잡자는 의미로 실천한 불교 내부의 자정 운동이다. 원래 한국불교는 독신을 유지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비구승들을 강제로 결혼시키면서 생기게 된 것이 대처승단이다. 동산은 이에 맞서 일본의 침략하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대처승단을 한국 불교의 독신승단으로 복원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한국 전통 승단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진행되었는데 불교혁신총연맹이 조직되어 선학원 등이 참여하게 되었다. 동산도 이 시기에 불교 정화 운동에 참여하여 사찰의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코자 하였으며, 계율을 바로 세우려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동산은 설법 시에 계를 강조하는 말씀을 많이 하였는데 “모름지기 공부하는 사람은 계행을 깨끗이 해야 한다. 계를 우습게 알고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믿지 않은 이가 있는데 부처님이 그렇게 행한 일이 없고 조사 또한 그렇게 한 일이 없다.”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입적 전까지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빠지는 일이 없었으며, 입적하기 사흘 전까지 보살계를 설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네팔에서 개최된 제4차 불교도 대회에 효봉, 청담, 금오 등과 함께 한국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1956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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