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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 태전의 불교정화 운동

금오 태전은 20세기 중반 청정승단을 추구하는 불교정화 운동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금오 태전(金烏太顚, 1896~1968)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16세인 1912년 금강산 마하연 선원에서 도암 긍현(道庵亘玄)을 은사로 출가했다. 법호는 금오(金烏)이고, 법명은 태전(太顚)이다. 1921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서 안거하다가, 같은 해 8월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일봉율사(一峰律師)로부터 구족계를 받았으며, 통도사 보광선원, 천성산 미타암에서 정진하였다. 만공의 법제자인 보월의 법맥을 이어 정진했다. 금오는 해방 후 정법수호를 위해 정화불사를 추진했던 대표적인 승려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20여 년은 일본제국주의의 유산인 대처불교에 반대하는 정화운동의 시기였으며, 이 시기 금오는 효봉‧동산‧청담 등과 함께 해방 후 일제에 의해 무너진 청정비구승단을 회복하고자 하는 불교정화운동을 이끌었다. 금오는 이후 한국불교 전통과 체계를 바로잡는 데 주력하여 대한불교 조계종이 성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정화운동이 한창일 때도 늘 참선하였고 상좌들에게도 오직 참선 수행만을 강조했다. 정화운동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긴 것은 청정 계율을 수지한 후 마음 놓고 수행할 선원(禪院)의 존재였다. 금오에게 있어 불교정화 운동의 목적은 대처승을 없애는 운동이기도 했지만, 오직 계(戒), 정(定), 혜(慧)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 바로 계율이었다. 불교정화의 핵심은 불교의 근본, 한국불교의 정통성, 화합승가, 사찰공동체, 비구승단 등의 수호 및 정립이라고 볼 수 있다. 금오는 계율을 지키지 않는 승려는 승려로서 취급하지 않았다. 총무원에 근무하는 승려들이 직업승이나 행정승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상좌들을 불러 모아 도끼로 총무원 기둥을 잘라 버리겠다며 절문을 나섰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승가가 수행공동체로 가느냐, 돈이 우선하는 조직으로 흐르느냐는 수좌들의 참선 수행과 계율 견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금오는 1954년 선학원에서 열린 불교정화추진위원회 발기회에서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불교계의 정화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1955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부종정(副宗正), 1956년 봉은사 주지, 1957년 화엄사 주지, 1958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였다. 1968년 법주사 사리각에서 세수 72세, 법랍 57세로 입적할 때까지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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