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 원기는 일제에 침탈에 맞서 불교를 수호하기 위해 애썼으며 조선불교 임제종의 대표직을 역임했다.
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는 경남 웅천에서 태어났으며, 17세 때 구례 연곡사에서 환월(幻月)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해룡(海龍)으로부터 사미계를, 화산(華山)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순천 선암사에서 경붕 익운(景鵬益運)에게서 교학을 배운 후 30세 되던 해에 강석(講席)을 승계하여 강백으로서의 명성을 떨쳤으며 후학 양성에 전력을 다했다. 경운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의 승려들이 선암사 대승암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경운은 순천에 포교당을 건립한 후, 1910년 경성에 중앙포교당이 설립되자 대중 교화사업에 앞장섰다. 세속으로 들어가 중생들을 제도하는 한편 계율을 지키는데 온 힘을 다했다. 1911년 일제는 친일 승려들을 앞세워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연합하여 조선불교를 장악하려고 했다. 이때 만해(卍海), 석전(石顚), 진응(震應) 등 조선불교를 지키고자 하는 승려들이 순천 송광사에서 총회를 열어 조선불교 임제종을 결의하고 임시 종무원을 송광사에 설치했을 때 임제종 관장에 선출되었다. 경운의 계율정신에 입각한 수행정진은 일본불교의 활동으로 느슨해진 한국불교의 지계정신을 선양하면서 일제강점기 조선불교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1929년에는 조선불교 선교양종 교무원이 설치되면서 교정(敎正)으로 추대되었다. 경운은 경전연구와 사경을 하고 후학지도를 하면서 포교와 전법은 물론 불사를 일으키는 등 쉬지 않고 정진하다가 1936년 선암사에서 세수 85세, 법랍 68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경운은 일제에 맞서 조선불교의 중심 역할을 위해 설립한 임제종의 대표로 추대되었다. 일제 암흑기 조선불교를 지키려는 승려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경운은 교학은 물론 계를 지키는데 앞장 서 조선불교 수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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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宗主 擎雲元奇 大禪師 散稿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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