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담 치익은 통도사의 대표적인 율사로서 승림 계맥을 이었다.
해담 치익(海曇致益, 1862-1942)은 근대 통도사(通度寺)의 대표적인 율사(律師)이다. 치익은 1880년(고종17) 19세 때 통도사로 찾아가 춘담(春潭)을 은사로 하여 승려가 되었다. 비구계를 받은 후에는 계율을 엄격히 지키면서 율장을 연구했다. 관음정근을 계속하면서 참회정진 기도에 힘썼으며 그 결과 2년 만에 불치병(不治病)이 치료되었다. 1882년(고종 19) 소백산 용문사(龍門寺)의 용호(龍湖)로부터 선 수행과 경전을 배우면서 불법의 이치를 증득했다. 1894년(고종 31) 동운산 고운사(孤雲寺)로 들어가 수월 음관(水月音觀)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았다. 1895년(고종 32) 통도사로 돌아와 전계사(傳戒師)가 되었다. 1897년(고종 34)에 승림(勝林)율사가 중국 법원사(法源寺)의 황계계단(皇戒戒壇)에서 수계한 후 통도사에서 계를 전할 때, 계단에 참석하여 승림의 계맥을 이었다. 치익은 계율을 철저하게 잘 지켰으므로 율사(律師)의 칭호를 들었으며, 보살계법회(菩薩戒法會)의 수계사(授戒師)로 활동하였다. 또한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대중들을 교화했으며, 계를 지니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계 이후 치익은 수많은 승려에게 계를 주었고, 40회가 넘는 법회를 주관하여 많은 대중들을 교화하였고, 대장경을 통도사에 봉안할 때 화주를 맡기도 하였다. 치익은 1899년(고종 36) 용화전을 중수하는 상량문을 썼다. 1912년에는 통도사의 사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비로암 구품탱화(1904), 비로암 칠성탱화, 옥련암 칠성탱화(1921), 삼성각 독성탱화(1957), 사명암 삼세불탱화(1930) 등 탱화 및 불상을 도금하는 불사를 이끌었으며, 말년에는 통도사의 회주가 되었다.
치익은 『증곡집(曾谷集)』을 남기고 있는데, 이 불교 시문집에는 통도사와 관련된 시가 많다. 치익의 제자들은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4년 부산 금정산 대원사(大願寺)에서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1945년 세수 84세, 법랍 65세로 안양암에서 입적하였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