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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 영기의 지계

남호 영기는 19세기 승려로서 계를 철저히 지킨 율사였으며, 동시에 불서 간행과 불교가사 창작에 앞장섰다.
남호 영기(南湖永奇, 1820-1872)는 전라남도 고부에서 태어나 14세인 1833년(순조 33) 보개산 심원사(深源寺) 지장암에서 출가하였고 승가사(僧伽寺)에서 대연(大演)의 제자가 되었다. 33세까지 19년 간 전국의 사찰을 유력하였다. 이후 계율을 철저하게 지켰고 경전을 열심히 염송하였으며, 게다가 경전을 베끼는 사경과 경전을 큰소리로 읽는 독경으로 소일하였다. 1852년 보개산에서 들어가 『아미타경』을 사경하였는데, 이때 자신의 몸을 찔러 피를 내어 먹물에 섞어서 맹세하는 마음으로 붓을 잡고 글자 한 자를 쓸 때마다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세 번 예배하고 세 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식으로 극진한 마음으로 임하였다. 이듬해인 1853년에는 삼각산 내원암으로 들어가 자신의 피를 섞어서 쓴 『아미타경』을 판목에 새겨 간행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동시에 『무량수경』도 함께 간행하였다. 특히 남호는 계를 철저히 지켜 율사(律師)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동시에 많은 불서를 간행하였으며, 불교가사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1852년 지장암(地藏庵)에서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사경(寫經)하여 삼각산 내원암(內院庵)에서 판각하여 간행하였을 뿐 아니라 십육관경(十六觀經)』, 『연종보감(蓮宗寶鑑)』『화엄경소초(華嚴經疏鈔)』 80권, 『행원품별행(行願品別行)』 1권, 『천태삼은시집(天台三隱詩集)』 1권, 『준제천수합벽(準提千手合壁)』 1권, 『불족적도(佛足跡圖)』등을 간행하였다. 『지장경』, 『관심론(觀心論)』을 판각하였으며, 1865년 해인사의 대장경 두 질을 인쇄하여 설악산 오세암과 오대산 적멸보궁에 봉안하였다.
남호는 여러 편의 불교 가사를 남기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광대모연가」와 「장안걸식가」가 있다. 「광대모연가」는 156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사의 원래 제목은 ‘대방광불화엄경판각광대모연가’로서 『화엄경소초』80권을 간행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사의 형태로 만든 창작물이다. 「장안걸식가」는 386구로 구성되었으며, 청정하게 걸식하는 행위가 수행의 방편이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호 영기의 생애는 비문과 사지에 자세히 기록되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를 통해 계율을 철저히 지킨 율사로서의 삶으로 일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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