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긍선은 『작법귀감』에 수계법과 그 절차, 취지 등을 담아 한국불교의 수계 전통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백파율사비(碑)도솔산 선운사
백파 긍선(白坡亙璇, 1767-1852)은 19세기 호남의 선백(禪伯)으로 불렸던 대표적인 선승(禪僧)이다. 선운사(禪雲寺)에서 출가하여 21세 때 화엄 교학의 종장인 설파 상언(雪坡尙彦, 1707-1791) 밑에서 구족계를 받고, 상언의 제자인 설봉 회정(雪峰懷淨, 1678-1738)으로부터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이었다. 오랜 기간 선법 공부에 전념한 뒤, 45세 때인 1811년(순조 11) “불법의 진실한 뜻은 문자에 있지 않고 도를 깨닫는 데 있다.”라고 하며 수선결사(修禪結社)를 조직하였다.
『선문수경(禪文手鏡)』,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 『법보단경요해(法寶壇經要解)』, 『오종강요사기(五宗綱要私記)』, 『선요기(禪要記)』, 『선문염송사기(禪門拈頌私記)』 등 다수의 선(禪) 관련 저술을 남겼다. 특히 『선문수경』에서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의 삼종선을 주창하며 각각의 경지에 차등을 두어,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과의 사이에 ‘선 논쟁’을 촉발한 것은 유명하다.
이처럼 백파 긍선은 선법에 정통한 인물이지만,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불교의례집인 『작법귀감(作法龜鑑)』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작법귀감』은 1827년(순조 27) 전남 장성 백양산 운문암(雲門庵)에서 간행된 2권 1책 분량의 저서이다. 양대 전란이 끝난 뒤인 17세기에 들어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와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 같은 불교상례집이 잇달아 발간된 바 있으나,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나 제작된 『작법귀감』은 재공(齋供), 수계(受戒), 분수(焚修), 점안(點眼) 등 대부분의 불교의례를 망라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지닌다. 그뿐만 아니라 각각의 의식 절차마다 불리는 범패(梵唄)의 가사를 상세히 수록하였으며, 각 음의 고·저·청·탁을 가릴 수 있도록 4성(聲)을 점(點)과 권(圈)으로 표시하고 구두점을 찍고 그 원칙을 권두의 서문과 범례에 밝힌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작법귀감』의 편찬 취지가 실제로 의례를 진행하는 승려들이 학습하고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음을 말해 준다. 『작법귀감』의 이러한 구성과 내용은 20세기 초 석찬 안진호가 편찬한 『석문의범(釋門儀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한편 『작법귀감』 상권의 맨 끝에는 비구십계(比丘十戒), 사미십계(沙彌十戒), 거사오계(居士五戒), 비구니팔경계(尼八敬戒)를 편제하여 일일이 갈마문을 싣고 그 절차와 취지까지 협주로 달아 놓아, 19세기 한국불교계에 비등했던 수계 전통 회복에 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즉 1826년 대은 낭오(大隱朗旿)가 자서수계(自誓受戒)를 발원하고 용맹정진한 끝에 신이를 경험하거나, 만하 승림(萬下勝林)이 1892년 청나라로 건너가 창도한파(昌濤漢波) 율사로부터 직접 계맥을 전수한 일들은 모두 『작법귀감』에서 사부대중의 수계의식을 비중 있게 다룬 것과 동일한 시대 분위기에 놓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백파는 율장의 정통 비구 수계 방식인 ‘이백오십 구족계’ 수지 대신 ‘십계’를 중시한 까닭에 대하여 “이 열 가지 계가 구족계의 근본이 되고 …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모두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십계의 수지에 의하여 의업(意業)까지 아우르는 출가자들의 내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진정한 참회를 동반한 십선계를 수계하고 수지함으로써, 기존의 수계 전통이 붕괴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교단의 질적 개선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또 십계를 삼취정계(三聚淨戒)의 논리로 풀이함으로써, 출가자가 십계를 수지할 때 청정 본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자연스럽게 악을 떠나 선을 계발하고, 나아가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하는 독자적인 입장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 집필자 : 민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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