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자’로 불린 호암 약휴는 침굉 현변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하였으며, 『호암청규』를 지어 산문의 기강을 바로 세웠다.
호암당대선사 약휴 진영선암사 성보박물관
호암 약휴(護岩若休, 1664-1738)는 선암사의 제5차 중창주이다. 12세에 선암사에 들어가 경준(敬俊) 장로에게 출가하고, 침굉 현변(枕肱懸辯, 1616-1684) 밑에서 수계하였다. 청허 휴정(淸虛休靜)-소요 태능(消遙太能)-침굉 현변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다. 장성한 뒤에는 ‘석문(釋門)의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선암사를 복구하고자 50년 동안 애써온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 3화상의 뜻을 받들어 8년에 걸쳐 선암사를 중창하고, 승선교(昇仙橋)를 설계 건조하였다. 먼저 1698년(숙종 24) 절의 북쪽에 원통각을 만들고 이듬해에 성상 1구를 만들었으며, 2년 뒤 53불의 전단상과 불화 53탱을 조성하였다. 다시 이듬해에 대법당을 중수하고 아울러 오십전의 낡고 새는 기와를 바꾸었다. 1704년에는 소요 태능, 침굉 현변 2조사의 영각을 만들어 제사를 모셨다. 이런 이유로 스님은 ‘선암사의 수호자’라는 뜻의 ‘호암자(護巖子)’로 불리기도 했다. 도내 각 사찰의 법강이 해이하게 되자 홀로 상경하여, 예조에 건백하여 전라도에 도승통제를 창설하고 법강을 바로 세웠다.
성품이 강직하여 공사(公私)의 손님에게 마혜(麻鞋: 삼이나 노 따위로 만든 신)를 선물하던 폐습을 없애고, 승려가 관리에게 절하던 풍습을 폐지하였으며, 호족이 사전(寺田)을 사유하는 것을 막아 산문을 부흥시켰다. 영조 12년(1726) 조정에서 호암당을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고 자헌대부(資憲大夫) 겸 장진승군대장(壯鎭僧軍大將)으로 삼았다. 북한산성에 부임하여 중흥사(重興寺)의 대웅전과 산경루(山景樓)를 중건했으며 태고국사의 영각(影閣)과 비각(碑閣)을 중수하였다. 이때 남북 양진(兩鎭)에서 승정(僧丁)을 징역(徵役)하였는데 그 고역이 심하였다. 이에 그는 조정에 건의하여 신역(身役)을 혁파하고 그 대신 향전(香錢)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한편 산문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모방하여 『호암청규(護岩淸規)』를 짓고 영원히 지키도록 부탁하였는데, 이것이 일제강점기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노년에는 『법화경(法華經)』을 한 글자에 세 번씩 절하며 사경(寫經)하였다고 전한다. 선암사에는 호암의 부도가 서부도전에 전하고 그의 진영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집필자 : 민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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