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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眞一)의 『석문가례초』

나암 진일은 『석문가례초』를 통하여 율장에 충실하고 중국의 전례를 상고하여 한국 실정에 맞는 상례를 펴고자 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17세기 전반 조선 사회에는 전반적으로 성리학적 질서가 공고해지자 불교 측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조응하는 변동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변동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와 나암 진일(懶庵眞一, ?-?)의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 등 불교상례집의 간행이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 활동의 영향으로 특정 법맥을 중심으로 하는 계파와 문파가 형성되면서, 이를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구조적으로 필요해졌고 그 과정에서 일반 사회의 친족관계와 예제(禮制)를 반영하여 기존과는 다른 불교상례집이 간행되게 되었다. 진일은 1936년에 직접 『석문가례초』의 서문을 쓰며 “불교가 비록 적멸(寂滅)을 즐거움으로 삼고 생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해도, 흉례(凶禮: 상례)는 가벼이 할 수 없으므로 바른 비니(毘尼) 즉, 율(律)을 따른 후에야 법칙에 부합하게 해야 한다.”라고 전제한다. 이어 『석씨가례(釋氏家禮)』와 같은 책이 우리나라[東國]에 없었던 관계로 흉례를 치를 때 어긋나는 일이 많았던바, 중국에서 간행된 『선원청규(禪院淸規)』, 『오삼집(五杉集)』, 『석씨요람(釋氏要覽)』 등에 상세하게 정리된 가례(家禮)를 참고하되, 동방의 예에 부합하는 것을 중심으로 요점만을 초출(抄出)한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상권에서는 승속오복도(僧俗五服圖: 승단과 속가의 오복도), 전물절차(奠物節次: 제물을 차리는 절차), 본종오복지도(本宗五服之圖: 본 종파의 오복도), 본종오복촌수도(本宗五服寸數圖: 본 종파의 오복 촌수도), 감구효당도(龕柩孝堂圖: 영구(靈柩)가 안치되어 있는 방의 진설을 도표로 만든 것), 명정서규(名旌書䂓: 망인을 대종사·염불인·좌선인·판사인(判事人)·학도인(學道人)·평상인 등으로 나누어 달리한 위패 쓰는 방식), 다비작법절차(茶毘作法節次: 다비 의식의 절차) 등을 다룬다. 하권에서는 장(杖)·곡(哭)·행조(行吊)·수조(受吊)·분상(奔喪)·장법(葬法)·사유(闍維:다비)·송장(送葬)·사리·입탑(立塔)·명(銘)·칭고(稱孤)·기일(忌日)·소자(䟽子) 등 불교의 각종 상의(喪儀)에 관한 의의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또 적서법(吊書法)·위서법(慰書法) 등의 항목을 두어 조문법에 대한 절차와 내용도 상세히 다루었으며, 제문식양(祭文式㨾) 항목에서 상의 절차에 따른 각종의 제문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발문 뒤에 「백장화상청규법(百丈和尙淸規法)」을 부록으로 수록하였다. 상권의 각종 오복도는 승가의 법맥 관계를 속가의 친족 체계에 유비하여 상복의 차이를 정리한 것이다. 벽암의 『석문상의초』에도 서두에 같은 성격의 승오복도(僧五服圖)가 제시되어 있어 17세기 한국 불교상례집의 큰 특징을 이룬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석문상의초』와 『석문가례초』는 모두 당나라 응지(應之)의 『오삼집』에서 체제와 내용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석문가례초』의 무상계(無常戒)는 한국의 다비법에만 나타나는 요소로서, 한국적인 염불 형식도 함께 한다고 한다. 요컨대 『석문가례초』는 중국불교의 상례 의식을 한국의 사정에 맞추어 발췌, 편집한 의례집이면서도, 동시에 율장에 충실하고 중국의 전례를 상고하고자 하는 진일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집필자 : 민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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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 - 배산호(1660)
    동국대학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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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 나암 진일(懶庵眞一) | 1634/166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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