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통 기화는 『현정론』에서 불교의 오계는 가장 초보적인 수행법이면서도 인과를 가르쳐 마음으로 복종시키는 뛰어남이 있다고 하였다.
현정론(顯正論)동국대학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득통 기화(得通己和, 1376-1433)는 조선 초의 승려이다. 당호인 함허(涵虛)를 붙여 함허 득통, 함허 기화, 함허당 득통 기화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본디 유교를 공부하여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성균관 유생이었으나, 한 승려와의 대화를 계기로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친구의 죽음으로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1596년(태조 5) 20세의 나이로 출가하였다. 이듬해 회암사(檜巖寺)로 가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의 제자인 무학 자초(無學自超, 1327-1405)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세종 3년(1421) 어명으로 왕실 원당인 대자암(大慈庵)에 주석하였고, 왕실의 존경을 받으며 여러 법회와 강설을 주관하였다.
기화는 나옹에서 무학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어받은 선승(禪僧)이면서도, 『금강경』과 『원각경』을 주석하고 여러 차례 강경법회(講經法會)를 여는 등 교학(敎學)에서도 자취를 남겼다. 세조 대의 불경언해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홍준(弘濬), 신미(信眉), 학미(學眉) 등이 그의 제자이며, 저술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오가해설의(金剛般若波羅蜜經五家解說誼)』(2권), 『금강반야바라밀경윤관(金剛般若波羅蜜經綸貫)』(1권),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설의(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說誼)』(3권),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2권), 『현정론』(1권) 등을 남겼다. 또 제자들이 그의 시문(詩文)과 설법 등을 모아 펴낸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1권)이 있다. 한편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이라는 책이 『현정론』과 유사한 내용과 주장을 다루므로 오랫동안 기화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서 반박되는 추세이다.
『현정론』은 14가지 주제를 둘러싸고 불교에 비판적인 질문과 이에 해명하는 대답을 주고받는 가운데, 유교와 불교의 일치성을 밝히고 불교의 가치를 주장하는 책이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질의응답은 ‘불살생(不殺生)-육식금지’와 ‘불음주(不飮酒)’를 주제로 하고 있어, 불교 계율의 가장 기본이 되는 5계(五戒: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중 이 두 가지가 당시 유교 지식인의 상식에 유독 부합하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이에 대해 기화는 “하늘의 도리는 지극히 어지니, 어찌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죽여서 자기의 목숨을 기르게 하겠는가?”라거나 “안으로 마음을 어둡게 하므로 스스로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고, 밖으로 위의를 잃게 하므로 교화하는 도리를 방해한다.”라고 대답한다.
이는 기화가 불교의 5계를 유교의 5상(五常: 인, 의, 예, 지, 신)에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기화는 본격적인 질의응답이 시작되기 전 『현정론』의 서두에서 “유교는 5상으로써 도의 요체를 삼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5계가 곧 유교에서 말하는 5상이다. 죽이지 않음은 인(仁)이다. 훔치지 않음은 의(義)이다. 음란하지 않음은 예(禮)이다. 술 마시지 않음은 지(智)이다. 헛된 말 하지 않음은 신(信)이다.”(儒以五常而爲道樞. 佛之所謂正戒, 即儒之所謂五常也. 不殺仁也. 不盜義也. 不婬禮也. 不飮酒智也. 不妄語信也.)라고 명시하였다. 동시에 유교가 사람을 가르치는 수단은 덕행(德行)이 아니면 명령이나 형벌인 데 반해 불교의 교화는 “침묵하되 이루고 말하지 않아도 믿음이 있게 되는 것”이고, 유교처럼 상벌만 보여주면 겉으로만 따를 뿐이지만 불교에서는 인과를 가르치므로 마음으로 복종시킨다고 하여, 유교에 대한 불교의 우위를 넌지시 표현하였다.
또 “오계는 사람으로 나게 하는 것”(五戒所以生人道也)이요, “저 오계와 십선은 가르침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수준의 것으로서 본래 근기가 가장 낮은 이를 위하여 시설한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이를 행하면 스스로 성실하게 되고 남에게 이익을 준다.”(夫五戒十善, 敎中之最淺者也, 本爲機之最下者而設也. 苟能行之則足以誠於身, 利於人矣.)라고 하여, 오계에 대해 불교의 가장 초보적인 수행법이면서도 그 방편적 효능과 존재론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는 면모를 보인다.
· 집필자 : 민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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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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