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익은 인도에 가서 5년 동안 범문과 율부를 공부하고 성왕 4년(526)에 인도승 배달다 삼장과 함께 범본 율문을 가지고 백제로 돌아와 율부 72권을 번역하였다.
겸익은 백제 성왕 때 인도로 가서 5년 동안 범문과 율부를 공부하고, 돌아와 백제 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수록된 「미륵불광사사적(彌勒佛光寺事蹟)」 에 의하면, 겸익은 526년(성왕 4) 인도로 건너가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율부(律部)를 깊이 공부하고, 백제 성왕 9년(531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아비담장(阿毘曇藏)』과 『오부율(五部律)』을 가지고 인도의 승려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하였다.
겸익이 귀국하자 백제 성왕은 일산(羽葆)과 풍악(鼓吹)으로써 교외에서 맞이하여 흥륜사(興輪寺)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서 국내의 명승 28인을 모아 겸익을 도와 율부 72권을 번역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백제 율종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에는 오부율 중 음광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파의 율부는 이미 번역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음광부의 율부는 중국으로 전해지지 못하였는데, 겸익이 오부율 전체를 전하게 된 것이다. 이후 담욱과 혜인 두 법사가 율부의 소(疏) 36권을 저술하였고, 성왕은 비담(毘曇)과 신율(新律)의 소(疏) 36권을 지어 태요전(台耀殿)에 봉장하였다고 한다.
겸익의 이러한 활동으로 백제 불교는 더욱 기반을 다지며, 본격적으로 계율이 연구되며 강설 되었다. 백제 불교는 계율을 중심으로 더욱 발전되어 사회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29대 법왕(法王) 원년(599)에는 살생을 금지시키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의 종류를 놓아주게 하였으며, 고기 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불살라 살생을 일체 금지시키는 조령(詔令)을 내렸다. 이러한 사실에 미루어 백제는 국가에서 불교의 계율을 실생활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지키도록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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