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는 미륵신앙과 점찰법회를 통해 계를 강조한 율사이다
진표(眞表)는 한국불교사에서 자장과 더불어 대표적인 율사로 꼽힌다. 통일신라 경덕왕대(景德王代)에 활동하였으며 점찰법(占察法)의 개조이다. 참회불교(懺悔佛敎)를 집대성하였으며 미륵신앙을 강조하였다. 점찰법은 자신의 과보와 고락길흉을 점찰하여 그에 따라 참회하는 수행 방법이다.
진표의 행적에 관해서는 여러 문헌에서 다루고 있지만 출신 및 생몰연대에 관해서는 정확한 확인이 어려우며, 저술 또한 남아있지 않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의하면 진표의 출가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이 있다.
진표는 매우 날쌔고 민첩하였으며, 활쏘기를 잘하였다. 개원연간(開元年間)에 짐승을 쫓다가 잠시 밭두렁에서 쉬었다. 그 사이 버들가지를 꺾어서 개구리를 꿰어 한 꿰미를 만들어 물 속에 두고 장차 반찬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사냥을 하였는데, 사슴을 쫓다가 산 북쪽 길로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꿰어 둔 개구리를 가지고 가는 것을 깜빡 잊어 다시 돌아가서 보니, 지난해에 꿰어 둔 30마리의 개구리가 아직 살아 있었다. 진표는 이 때에 탄식하여 스스로 책망하며 말하기를 "괴롭도다. 어찌 입과 배가 저같이 꿰어 해를 넘기며 괴로움을 받았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버들가지를 끊어 모두 놓아주고 뜻을 발하여 출가하였다.
학자들은 이 기록을 이미 멸망한 백제 유민들의 고통에 대한 진표의 애달픈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출가하였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다수이다. 진표는 모악산 숭제법사(母岳山 崇濟法師)의 문하에서 출가하여 교법을 받은 후 전국을 다니며 수행을 이어갔다. 진표의 수행에 대한 기록은 비문에 남아있는데 고통스럽게 참회하면서 몸을 던져 땅을 치고, 뜻으로는 계법을 구하여 미륵보살이 자신에게 계법을 주기를 희망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불법을 통해 여러 곳을 다니며 중생을 교화하던 중 현재의 강릉지역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인도하였으며, 그곳에서도 불법을 설하고 계를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학자들은 진표가 유식승려라는 해석을 하기도 하고, 율사(律師)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전자는 팔·구간지를 신훈종자(新薰種子)·본유종자(本有種子)라고 하는 유식학 용어를 사용하여 법을 설파하였고 미륵신앙을 강조하였음을 그 근거로 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진표가 미륵신앙과 점찰법회를 통해 계를 강조하고 『송고승전』에 그의 전기를 명률(明律)편에 수록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율사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진표는 금강산 발연사 동쪽의 바위에 앉아 입적하였다고 전해지며, 생전에 영심(永深), 보종(寶宗), 신방(信芳), 체진(體珍), 진해(珍海), 진선(眞善), 석충(釋忠) 등에 법을 전하였는데, 이들은 산문(山門)의 조사가 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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