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소(懷素)는 사분율종(四分律宗)의 세 분파 가운데 하나인 동탑종(東塔宗)의 초조(初祖)이다.
동탑종(東塔宗)은 동탑부종(東塔部宗) 또는 동탑율종(東塔律宗)이라고도 한다. 당(唐)나라 사분율종(四分律宗)의 세 분파 가운데 하나이다. 동탑종의 초조(初祖)는 회소(懷素, 634-707)이다. ‘동탑’이라는 명칭은 회소가 장안(長安) 숭복사(崇福寺)의 동탑에 머물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1]『宋高僧傳』卷14(T50, pp. 792b25-793a10):“唐京師恒濟寺懷素傳(賓律師)”,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2]『開元釋教錄』卷9(T55, p. 564c19-27):“沙門釋懷素” 등에 의하면, 회소의 속성(俗姓)은 범씨(范氏)이며, 그의 선조는 남양(南陽) 사람이다. 조상 대대로 벼슬을 함으로써 경조(京兆)[3]서울, 수도를 뜻함.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 이씨(李氏)는 꿈에 구름과 우레가 진동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임신하였다. 아기가 태어날 때 신령스러운 광명이 방 안에 가득하였다. 보는 이들이 “이 아이는 귀하고 지극하며 장차 왕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회소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기질과 태도가 너그러웠다. 귀로 듣고 입으로 외우는 것은 모두 노련하게 익히고 숙달하였다.
회소는 나이 10세가 되자 갑자기 출가할 뜻을 일으켰다. 용맹하고 예리한 성품이어서 부모조차 막을 수 없었다. 정관(貞觀) 19년(645)에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론(經論)을 탐구하였으나, 구족계(具足戒)를 받고는 오로지 율부(律部)에 집중하였다. 회소는 법려(法礪)의 『사분율소(四分律疏)』를 연구하며 몇 년 동안 익히다가, “옛사람의 뜻과 문장은 다 잘하지 못하였구나.”라고 탄식하며, 함형(咸亨) 원년(670)에 용기를 내어 『개사분율기(開四分律記)』를 지었다.
상원(上元) 3년(676, 丙子)에 서울로 돌아온 회소는 칙명(勅命)으로 서태원사(西太原寺)에 머물면서 도성(道成) 율사의 강론을 듣고 배웠다. 곧바로 편집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 영순(永淳) 원년(682)에 십축(十軸)으로 완성되었다. 회소가 『사분율소』를 바로잡아 고치니 열여섯 가지의 오류가 있었다. 새로 세운 논리가 수백조(條)나 되었으며 한 종파[一家]가 세워졌다. 이를 동탑율종(東搭律宗)이라 한다. 스님의 교화는 빠른 기세로 왕성해졌으며 많은 것이 전해졌다. 『구사론소(俱舍論疏)』 15권, 『유교경소(遺敎經疏)』 2권, 『초(鈔)』 3권, 『신소습유초(新疏拾遺鈔)』 20권, 『사분승니갈마문(四分僧尼羯磨文)』 두 권, 『사분승니계본(四分僧尼戒本)』각 1권을 저술하였으며, 하루에 『금강경(金剛經)』 30권을 외우고 대율(大律)을 강의하였다. 이미 지은 소(疏)는 50여 편이 넘었고, 그 밖에 경전을 쓰고 그림과 불상(佛像)을 만든 것이 헤아릴 수 없었다. 대체로 회소의 소(疏)를 ‘신장(新章)’ 또는 ‘신소(新疏)’라고 한다. 이는 법려의 소(疏)를 고소(古疏)라고 한 것에 대응한 것이다.
회소가 사찰의 별원(別院)에서 갑자기 입적(入寂)하자, 허공에서 하늘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세속의 나이는 74세이고, 법랍은 53세였다[경룡(景龍) 원년(707)]. 장례식날 큰 학이 탑을 돌면서 슬피 울었는데, 날이 저물어서야 비로소 흩어졌다고 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주석
- 주석 1 『宋高僧傳』卷14(T50, pp. 792b25-793a10):“唐京師恒濟寺懷素傳(賓律師)”
- 주석 2 『開元釋教錄』卷9(T55, p. 564c19-27):“沙門釋懷素”
- 주석 3 서울, 수도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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