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는 중국 당나라의 율승(律僧)으로 『오부구분초』, 『사분율소』 등을 찬술하였다.
지수(智首, 567-625)는 수나라 때의 승려로, 속성은 황보(皇甫)이다. 어릴 때 상주(相州) 운문사(雲門寺) 지민(智旻) 문하로 출가해 22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후에 도홍(道洪)에게 율(律)을 배웠으며 서른이 되기 전에 율을 강의하였다. 또한 수문제(隋文帝)가 장안(長安)에 대선정도량(大禪定道場)을 세울 때 지민을 따라 입관(入關)하여 사찰에서 율을 가르쳤고, 또 삼장(三藏)의 경전들을 교정하였다. 그 때 관중(關中)은 오로지 승기율(僧祇律)을 신봉했는데, 홍준(洪遵)이 사분율(四分律)을 개창하자 도속(道俗)이 비록 이를 따랐지만 전해지는 율의(律儀)가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스님이 이에 『오부구분초(五部區分鈔)』와 『사분율소(四分律疏)』를 써서 여러 스님이 풀지 못한 내용을 밝히니 다들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법예(法譽)가 더욱 융성해졌고, 홍준도 직접 법좌(法座)에 나란히 했다. 인수(仁壽) 이후 30여 년 동안 경사(京師)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대업(大業) 초에 칙명으로 대선정도량에 머물면서 법화(法化)가 더욱 흥성했는데, 일찍이 상주(相州) 운문(雲門)의 옛 터에 쌍탑(雙塔)을 세우고 출가하여 수계(受戒)한 장소임을 적었다.
당나라 정관(貞觀) 원년(627) 천축(天竺)의 바라파가라밀다라삼장(波羅頗迦羅蜜多羅三藏)이 범본(梵本)을 가지고 중국에 와 한문으로 번역했는데, 율에 대한 내용은 모두 스님의 자문을 구해 정정했다. 8년(634) 태목황후(太穆皇后)를 위해 장안에 홍복사(弘福寺)를 세우고 널리 유덕(有德)한 스님을 모았는데, 이 때 상좌(上座)로 불려 승강(僧綱)을 맡았다. 사분율종(四分律宗) 제8조(祖)로 불리며, 제자에 도선(道宣)과 도세(道世), 혜만(慧滿), 도흥(道興), 지흥(智興) 등이 있다. 저서에는 『오부구분초(五部區分鈔)』,『사분율소(四分律疏)』, 『출요율의강목장(出要律儀綱目章)』, 『소아미타경초(小阿彌陀經鈔)』 등이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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