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발마는 인도 출신 승려로서 중국 최초로 남림사에 계단을 설립하였다.
구나발마(求那跋摩, Gunavarman, 367-431)는 인도 계빈국 왕족 출신 승려로 공덕개(功德鎧)라고도 부른다. 20세에 출가하여 삼장(三藏)에 통달하였으며, 그의 나이 30세에 계빈국왕이 죽은 후 후계자가 없어 왕위에 오를 것을 간청했으나 듣지 않고 산중에 숨어 수행하였다고 한다. 후에 사자국에 머물며 불법을 펴다가, 431년 유송(劉宋)의 혜관(慧觀) 등이 초청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기원사(祇洹寺)에 머물렀다.
구나발마는 434년 남림사(南林寺)에 계단을 설치하여 승려들에게 수계하였다. 계단이란 계(戒)를 주고 받을 때 이용되는 특정한 장소에 흙이나 돌로 쌓은 구조물로서 다른 말로 계장(戒場)이라고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인도 나란다에 있던 계단은 평지에 사방이 한 장 정도이고, 높이가 2척 가량되는 단을 쌓았고 그 가운데에 소탑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3세기 중반 무렵 낙양에 계단을 설립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구나발마의 남림계단을 중국 계단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구나발마는 기원사에 머물면서 『법화경』, 『십지경』 등을 강설하고,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 『사분비구니갈마법(四分比丘尼羯磨法)』등 『담무덕갈마(曇無德羯磨)』, 『우바새오계략론(優婆塞五戒略論)』, 『삼귀급우바새이십이계(三歸及優婆塞二十二戒)』 등 많은 율전을 번역하였다. 그가 역경한 경론과 율전은 10부 18권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나발마는 기원사에서 65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구나발마의 입적 후 남림사 계단 앞에서 다비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구나발마의 사후에는 그의 제자인 승가발마(僧伽跋摩)가 스승의 유시를 받들어 이 계단에서 300여 명에게 수계를 하였다. 이를 통해 구나발마가 설립한 남림계단이 매우 큰 규모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구나발마 이후 중국의 계단으로는 당나라 때에는 도선(道宣)이 667년에 정업사(淨業寺)에 만든 계단이 전해진다. 도선은 계단의 명칭과 기원 형태 등에 관해 자세히 기술한 『관중창립계단도경(關中創立戒壇圖經)』을 저술하였으며, 이에 의거하여 이후 중앙과 지방의 여러 사찰에 계단이 설립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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