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은 중국 동진(東晉)의 여산(廬山)에 주석했던 고승이며 『사문불배왕자론』, 『승니규범(僧尼規範)』등 을 저술하여 계율을 정비하였다.
혜원(慧遠, 334년-416년)은 중국 동진(東晉)의 여산(廬山)에 주석했던 고승이다. 수대(隋代) 정경사(淨影寺)의 승려였던 혜원과 구별하여 여산 혜원(廬山慧遠)으로도 불린다. 속성(俗姓)은 가(賈)씨이며, 어려서 부터 유교의 오경(五經)과 도가(道家)의 노장(老莊)사상에도 정통하였다. 13살 되던 해 외삼촌을 따라 낙양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도안(道安, 314-385)이라는 승려가 태행항산에서 불교 경전을 강의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출가를 결심하였다.
361년에는 도안을 따라 왕옥산(王屋山)으로 들어가 몇 년 동안 각지를 돌아다녔고, 366년에는 양양(襄陽)으로 와서 20년 동안을 주석하였다. 건원 14년(378)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양양을 침공하였을 때, 스승 도안이 태수 주서(朱序)에게 붙잡혀 장안(長安)으로 연행되었다. 혜원 역시 스승과 헤어져 남쪽으로 내려왔고, 후베이성(湖北省) 형주(荊州)의 상명사(上明寺)로 옮겼다. 그 뒤 장시성(江西省)의 심양(潯陽)에 이르러 여산으로 들어가 서림사(西林寺), 즉 훗날의 동림사(東林寺)에 주석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30년 동안 혜원은 한 번도 산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로 유명하다. 혜원은 여산에 30여 년간 거주하였으며, 60세 이후로는 산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여산 혜원은 승려로서 계율을 굳건히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스승 도안 역시 계율을 매우 중시했던 인물로 『승니규범(僧尼規範)』을 저술하여 계율을 정비하고 연구를 지속하였다. 또 혜원은 『십송률』의 번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십송률』을 번역하던 불야다라(佛若多羅)가 갑자기 입적한 후 번역 작업이 중단된 것을 개탄한 혜원은, 담마류지(曇摩流支)가 장안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내어 번역의 완성을 간청하였고, 번역하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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