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행은 중국 최초 수계를 받은 위(魏)나라의 승려이다.
주사행(朱士行, 203-282?)은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승려로 허난(河南) 영천(穎川) 출신이다. 위(魏) 감로(甘露) 5년(260)에 출가해 낙양(洛陽)에서 한역(漢譯)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을 연구하고, 낙양에서 강의하였다. 『고승전』에 따르면, 주사행은 『도행반야경』의 문장이 난해하여 탄식하며 “이 경은 대승의 요체인데, 번역의 이치를 다하지 못하였다. 맹세코 뜻을 세워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멀리가서 대본(大本)을 구하여야 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뜻에서 출가하여 감로(甘露) 5년(257)에 옹주(雍州)를 출발하였고, 서쪽 고비 사막을 지나 우전국(于闐國)에 이르러 범서(梵書)로 된 정본(正本) 90장(章)을 얻었다고 한다. 이때 그가 얻은 반야경은 바로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이며, 주사행의 제자인 불여단(不如檀)을 시켜 낙양으로 보냈지만, 그는 계속 서역에서 유행하다가 80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고 한다. 『고승전』에는 우전국의 소승을 배우는 승려들이 국왕에게 청하여 경전을 반출하지 못하게 막자, 주사행이 궁전 앞에 장작을 쌓아 불태우며, “만약 불법이 중국 땅에 유통할 것이라면, 불경은 곧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호명(護命)이 없다면, 어찌 하겠는가?”라고 말하고, 경전을 불 속에 던지자 불은 곧 꺼지고, 경전은 한 글자도 손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따라 경전을 진류(陳留) 창원(倉垣)의 수남사(水南寺)로 보낼 수 있었다. 주사행이 보낸 경전은 태강(太康) 3년(282)에 낙양에 무사히 전달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원강(元康) 원년(291)에 수남사에서 무라차(無羅叉)와 축숙란(竺叔蘭)에 의하여 번역되었다.
또한 『대송승사략(大宋僧史略)』에 따르면, 주사행은 중국 최초 수계자로 전해진다. 당시 중국에는 오직 삼귀계(三歸戒)를 받을 뿐, 대승(大僧)과 사미(沙彌)의 구별이 없었다. 수계법이 중국에 전해지기 전이었는데, 인도승려인 담가가라(曇柯迦羅)는 위(魏)의 가평(嘉平) 때(249~254) 중국 낙양에 와서 『승기계심(僧祇戒心)』을 번역하며 중국에 계법을 전하였다. 이때 중국에서 최초로 계를 받은 수계자가 바로 주사행이었다고 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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