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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율사

중국은 2세기 후반부터 율사들이 등장하였으며, 광율 중 『십송율』에 대한 전파와 연구가 가장 활발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계율을 적시한 율장 역시 수백년에 걸쳐 전승되게 된다. 특히, 계율은 비구나 비구니의 수계의식과 관련되므로 중국에서도 일찍부터 중요시 되었다. 중국에서는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중반에 율전이 처음으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漢) 시기에는 안세고가 율과 관련된 문헌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세기 중반인 조위(曺魏) 시기에는 천축의 삼장 담가가라(曇柯迦羅), 전진 시기에는 축불념(竺佛念), 담마지(曇摩持), 혜상(慧常) 등이 율장과 관련된 문헌을 역출했다. 구마라집이 406년 광율 중 『십송율』을 최초로 한역하면서 율장에 대한 역경이 본격화되었다. 또한 중국식 승단생활의 의식과 규범을 승니궤범으로 새로이 제정한 도안(312-385)과 5세기 이후 4부의 율이 모두 전해져 활발한 역경 사업이 이루어졌다.
『십송율』은 설일체유부 계통의 광율로서 역출된 장안보다는 강남에서 널리 선교되었다. 다른 부파의 율장들 보다 먼저 역출되었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다. 또한 『십송율』의 전역과 유포에는 구마라집과 비마라차(卑摩羅叉)가 큰 역할을 하였다. 진(晋)말 송(宋)초에는 南北에서 여러 종류의 광율이 역출되었다. 그 중에서 『십송율』은 남북에서 모두 발전하였고 강남에서 성행하였다. 송(宋), 제(齊) 시기에 『십송율』과 관련하여 활발하게 역출하고 연구한 한인승이 20여명에 달한다. 유송의 인물이 11명, 남제의 인물이 9명 이상이 된다. 대표적으로 승거․현창․법헌․도영․혜우 율사 등을 들 수 있다. 법영은 비구와 비구니를 함께 지도했고 『십송계본』과 『갈마』를 저술함으로써 강남에서 『십송율』의 발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지칭(智稱), 승우(僧祐) 등이 법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양(梁)․진(陳)시기에도 『십송율』은 계속해서 성행하였다. 『고승전』과 『속고승전』에는 이 시기 『십송율』전파에 앞장섰던 10여명의 승려들이 전해지고 있다. 『십송율』이 중국 내 강남에서 광범위하게 전파된 이유로는 최초로 역출된 광율이라는 점이 있다. 또한 다른 광율과 비교해 보면 경제적인 제약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았다는 측면도 있다. 계율에는 ‘금은’, ‘판매’ 등과 관련된 조항이 있는데, 『마하승기율』이 가장 엄격하고, 『사분율』이 그 다음이고, 『십송율』이 가장 완화된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연했다고 볼 수 있다. 광율 중 가장 먼저 역출된 『십송율』이후 동진의 불타발타라는 『마하승기율』을, 유송의 불타습이 『오분율』을 역출하여 5대 광율이 거의 완비하게 되었다. 이후 대승계인 유가계와 범망계가 널리 퍼져나가면서 중국의 율사들 사이에서도 율장 연구에 변화가 있게 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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